유종하 한적 총재 “좌절감 느꼈다”

2011-10-14     나기자

ㆍ이임식서 정부에 불만 토로

유종하 대한적십자사(한적) 총재(75·사진)가 14일 물러나면서 “좌절감을 갖고 떠난다”고 정부를 향해 불편한 심경을 표출했다. 인도적 대북지원 같은 실무를 맡은 한적이 독립성 없이 정부의 대북정책에 끌려다닌 불만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유 총재는 서울 남산동 한적 본사에서 가진 이임식에서 “좌절감을 갖고 한적을 떠난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한적은 정부와의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뼈있는 말을 남겼다. “모금이나 취약계층을 돕는 문제에서 한적은 독립성과 중립성의 원칙에 따라 활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적이 반관반민(半官半民)의 성격상 사실상 정부에 예속되고, 특히 대북사업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 것에 우회적인 불만을 나타냈다.

유 총재는 “외국의 한 구호기관 책임자가 ‘남한 국민에게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는 북한의 영·유아나 어린이를 기아에서 구출하는 것’이라고 간곡히 말한 내용을 잊을 수 없다”며 “한적이 북한 어린이를 돕기 위한 모금을 할 날이 곧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인간의 고통 중에 가장 간절하고 애타는 고통”이라며 “우리는 이 고통을 경감해주기 위해 모든 우선적인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총재는 재임시 남북경색 국면에서도 2009년, 2010년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두차례 치르고 인도적 대북지원에도 의욕을 보였으나, 정부와의 관계에서 한계를 느낀 것이다.

일례로 올해 8월 정부의 대북 수해지원 물품에 쌀 같은 식량 대신 초코파이, 과자 등이 들어간 데도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한적의 한 인사는 전했다. 이 과정에 자신에게 제대로 보고되지 않아 더 ‘좌절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대북 수해지원은 북한이 응하지 않아 결국 이달 초에 무산됐다.

김영삼 정부 시절 외무부 장관(1996~98년)을 지낸 유 총재는 이명박 대선후보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뒤 2008년 10월 임기 3년의 한적 총재에 올랐다. 그는 2008년 4월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주한 미국대사를 만나 김병국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52)의 무경험을 거론하며 “이 대통령이 아첨꾼들에게 둘러싸여 있다”고 비판한 것으로 폭로전문 웹사이트인 위키리크스에 전해져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유 총재는 지난달 청와대에 연임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고 후임에는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유중근 부총재(66)가 이날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