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강… 문학은 ‘통곡의 강’

2011-10-02     양대영 기자

“문학이 더 이상 당대의 핵심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지리멸렬의 시대이긴 하지만, 만약 어떤 이가 정녕 한 시절의 참다운 문인이라면 잠수함의 토끼나 광산의 카나리아처럼 다른 이들보다 먼저 산천의 파괴에 몸을 떨며 신음을 토하고, 통증을 느끼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라면 누구보다 예민한 ‘생명과 통증에 대한 감수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소설가 최성각의 언명이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작가들의 신음과 통증을 담은 산문집 <강은 오늘 불면이다>와 시집 <꿈속에서도 물소리 아프지 마라>(아카이브)가 출간됐다. 시집 <…아프지 마라>에는 시 100편이, 산문집 <…불면이다>에는 29편의 산문이 수록됐다.

한국작가회의는 지난해 2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조금 지급을 위해서 촛불시위 불참 확인서를 요구하자 보조금을 거부하며 ‘저항의 글쓰기 운동’을 펼치기로 하고 ‘저항의글쓰기실천위원회’(위원장 도종환)를 꾸렸다. 위원회는 그동안 4대강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남한강·낙동강으로 순례를 떠나고 환경단체 등과 함께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왔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 두 권의 선집이 출간됐다. 고은·신경림 시인과 같은 원로작가부터 김경주·신용목 시인 등 젊은 작가, 그리고 소설가 강영숙·한유주 등 한국작가회의 회원이 아닌 작가들까지 광범위하게 ‘저항의 글쓰기’에 참여했다.

작가회의 사무처장 김근 시인은 “4대강에 반대하는 ‘문학적 저항’을 고민하다가 시집·산문집을 기획하게 됐다”며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강이 갖고 있는 정서적 층위, 강에 기대어 살고 있는 생명과 공동체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했다”고 취지를 요약했다.

“이제 강은/ 내 책 속으로 들어가 저 혼자 흐를 것이다/ 언젠가는/ 아무도 내 책을 읽어주지 않을 것이다…이제 강은 오늘 저녁까지 오늘 밤까지 기진맥진 흐를 것이다/ 자고 나서/ 돌아와 보면/ 강은 다른 것이 되어 있을 것이다/ 어이없어라 내가 누구인지 전혀 모를 것이다”(고은, ‘한탄’ 가운데)

고은 시인의 시 ‘한탄’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정신을 압축해 보여준다. 이 땅의 많은 작가들에게 강은 삶과 문학의 뿌리와 같다. 도종환 시인은 “강은 우리에게 시를 가르쳐주었고 시인의 영혼을 지니게 해주었다”며 “남한강 줄기를 보고 자란 신경림 시인이 ‘남한강’과 ‘목계장터’ 같은 빼어난 시를 쓸 수 있었고, 섬진강 강가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김용택 시인이 어떻게 시인이 되었겠는가”라고 했다.

신경림 시인은 “강으로부터 세상을 배우고 강으로부터 문학을 공부했다. 강을 통해서 세상에 나가고 강을 통해 사람을 만났다”며 “강은 강일 뿐 아니라 문화이기도 하고 역사이기도 했다. (4대강 사업은) 한 시대의 경제적 유혹에 몇백 년 몇천 년을 이 땅에서 살 후손들에게서 문화와 역사까지 빼앗는 결과가 된다”고 썼다.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이 ‘강처럼 길디길게 흐르라고, 해가 비치면 밝게 반짝이라고 지어준 이름’을 갖고 있는 소설가 한강은 “4대강 사업으로 곳곳에서 발파 작업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뉴스에서 접한 밤, 이상하게도 아침까지도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가까운 사람이 등과 허리를 누군가가 강제로 밟아 부수고 있는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고 적었다.

실험적 서사를 선보이는 소설가인 한유주는 젊은 세대가 체감하는 강에 대한 정서를 대변한다.

“나는 강을 기억하지 않았다. 강에 대한 기억이 구축되기도 전에 댐으로 가로막혔다. …강에 가본 적은 있으나 나는 강을 본 적이 없다. 강은 항상 너무 멀리서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현대라고 부르는 시간이 내게서 강의 풍경을 제거했다. 어쩌면 사람들이 내일이라고 부르는 시간에는 강이 제거되기에 이를지도 모른다.”

이제는 4대강 사업의 무지막지한 속도전으로 인해 돌이키기 힘들어진 우리 강의 풍모. 추억이나 신화로만 기억될 그 강의 무너짐과 사라짐을 고발하고 아파하는 작가들의 육성이 두 선집에 선연하다. 김근 사무처장은 “외부 단체와 연대해 시집·산문집 낭독회를 벌이는 등 저항의 글쓰기를 이어갈 실천 방법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강제욱·김흥구·노순택 등 10명의 사진작가들이 4대강 공사 현장을 찍은 사진을 모은 사진집 <사진, 강을 기억하다>(휴머니스트 출판그룹)도 이번주 출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