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태식칼럼](83)정직한 승자

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2015-12-18     영주일보

내가 삼천리상사를 인계할 때 인수한 사람 H씨는 나와는 오현고 동창이었다. 서울서 살다 고향에 돌아와서 무엇을 해야되겠는데 마침 이 점포를 양도한다 하여 찾아왔노라 하였다. 그랬다. 장사는 지금이 절정에 이르렀다. 헌데 불행하게도 우리는 부부가 다 쓰러질 상태여서 더 지속할 수 없게 된 것이어서 인계코자 한 것이다.

영업상황을 설명해 달라고 해서 나는 동창에게 특별히 거짓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거짓이 있으면 동창모임에서 경원시 당할 것이다. 특히 나는 중학교 졸업하고 1년 쉬어서 진학했으니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어리고 초등학교, 중학교를 같이 다닌 저들과 확실히 친밀감 면에서 차이가 난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는 나는 외톨이다. 여기서 따돌림을 당하는 것은 나에게는 비극이다. 특별히 이 일을 잘 처리하자고 생각하고 그 친구 보고 “계약할 때 너와 제일 친한 친구를 입회인으로 해라. 그래야 무슨 일이 있을 때 너에게 유리하다”고 말하니 제주은행의 대리 정태봉, 수협 제주도지부 강광림 과장 두 친구를 데려왔다. 나는 매상은 월평균 하한선을 말했다. 혹시 새로운 주인이 왔다해서 손님이 떨어지면 매상이 떨어지고 그러면 내가 거짓말한 것이라고 하면 변명하기 어려워지니까 하루 보통 60~70만원 매상을 낮춰서 40만원은 된다고 하였고 물품은 구입장부에 의하여 부가세를 빼고 운임을 빼서 계산하였다. 그랬더니 입회인으로 온 두 사람이 그렇게 해주면 잘해주는 것이라고 하여 계약이 성립되었다.

물품목록을 작성하고 계약금을 받고 인계하였다. 영업을 해보니 내 말이 진실이 아니었다. 내가 말한 것보다 거의 두배 가깝게 매상이 올랐다. 자전거 기술이 없고 큰 장사에 경험이 부족한 그는 매일 무리를 하였다. 나는 혹시 매상이 떨어지면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힐까봐 제일 적게 판매한 날의 매상액을 말했노라고 하니 그는 고맙다고 하였다. 잔금 치르는 날이 왔다. 은행에 같이 가면서 “너는 건강하니 몇년은 끄떡 없을 것이다. 나는 보다시피 이렇게 몸이 허약하고 병이 점점 심해지는데 부인마저 골병들어 자리에 누우니 기반을 다지고도 손떼게 된 것이다”라는 말을 주고 받으며 은행에 가서 잔금청산을 받았다.

그런데 사람 운명은 누구도 모른다. 그 친구가 다음날 저녁 뇌출혈로 사망한 것이다. 나는 차마 가볼 수가 없었다. 그 당시 나는 3층에 살았고 1층과 2층은 그 친구가 임차한 상태이고, 영업을 인수하여 얼마 되지 않아서 사망했으니 나는 충격이 크고 가서 보는 것조차 두려웠다. 동창들이 모여 나를 성토했다. 내가 만든 동창회가 나를 향해 돌팔매질을 하는 것이다. 모두는 아니지만 특히 고인과 친한 친구는 목청을 높여 현태식이가 책임져야 한다고 하는 정보가 들려왔다. 그 중에 한 친구만 현택식이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나를 역성들어 주어서 그나마 더 험한 이야기가 중단되었다고 하였다. 조문을 가서 동창들에게 계약의 경위를 말했다. 그리고 정태봉, 강광림이가 고인과 제일 친하고 그 친구가 입회했으니 물어보라고 말해주었다. 그 두 사람이 해명을 했다. 현태식이는 그렇게 양심적이고 정직하게 말하고 매수자에게 유리하게 하였다고 그래서 나는 날이 지날수록 좋은 평을 받았다. 몇푼의 이익을 위하여 술수를 썼더라면 사회적으로 또는 동창사회에서 매장되고 불신을 당했을 것이다.

어느 사회, 어느 시대나 있는 일이지만, 내가 좀 잘 되니 배아파하는 친구가 있게 마련이다. 나에게서 이익을 취하려다 거절당한 어느 동창이 급변으로 죽은 이 친구의 죽음을 놓고 적극적으로 나를 성토했다고 한다. 사물을 보는 데는 사리에 맞고 경우에 맞도록 해야지 자기의 이해에 기준을 두면 쓰겠는가.

정직하고 양심적인 게 복을 가져온다는 것을 그 후 더욱 신념화했다. 양심적이고 정직해서 나는 진흙 수렁에서 벗어나 더욱 새로운 인식을 동창사회에 각인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