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어떤 하루

문순애 일도1동주민센터

2015-11-11     영주일보

이른 출근을 하고 책상을 말끔하게 닦은 후 흐뭇한 심정으로 의자에 앉으니, 주민센터 근처에 사시는 어르신 한 분이 어김없이 사무실 입구의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역시 흐뭇한 표정으로 들어오고 계신다. 익숙한 인사를 나누고 잠시 문서 처리를 하려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나 00사는 이00인데, 육지 갔다가 넘어져서 다리를 접질렸어. 한 달이 다돼가는데도 목욕도 못하고 집안일도 못하고 있는데 이럴 때 동사무소에서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닌가...“
기초수급보장을 받으시는 어르신인데 이동목욕서비스와 노인돌봄종합서비스를 받고 싶으시다는 내용의 전화를 하신 것이다.

장애가 있는 분이어서 장애인복지관 쪽으로 연결하여 이동목욕서비스 가능여부를 알아보고, 복지관 측과 같이 어르신 댁을 사전 방문하는 김에 돌봄서비스 관련 신청서를 작성하기로 하고 내일 오후로 방문 약속을 잡았다.

빛의 속도로 밀린 문서 처리를 하는데, 늘 걱정이 많은 표정인 수급자 한 분이 다급하게 들어오신다. 품에서 너덜너덜 해진 안내문 한 장을 꺼내시더니 한 곳을 가리키며 거기로 전화를 해보라고 하신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종합해보니, ‘얼마 전에 임대주택 신청을 해서 결과가 늘 궁금했는데 마침 오늘 자기가 집을 잠깐 비운 사이에 누가 다녀갔다는데 분명히 주택공사에서 다녀갔을 것이다. 안내문에 있는 그 담당자가 왔을 것이 분명하니 동사무소에서 전화를 해주라’는 것이 그 분의 요구였다.

앞뒤 내용이 파악은 되었지만, 일단 그 분의 요구대로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 전화를 드렸고 예상했던 대로 주택공사에서는 방문한 적이 없음을 그 분 앞에서 확인해 드렸다. 필요하면 주택공사에서 전화가 갈 것이므로 항상 휴대폰 충전을 충분히 해서 전화만 잘 받으시라고 안내해드리니 안심한 표정으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한 자원봉사회에 지원 대상 독거노인가구를 안내하기로 했고, 군대에서 다친 귀로 평생을 고생했지만 형편이 어려워 병원 진료를 받아보지 못한 어르신의 장애등록신청을 위해 병원 여러 곳과 통화하다 보니 어느새 시계가 오후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문서 처리는 결국 다시 야근으로 남았지만, 주민센터가 어쩌면 마지막 의지처일 수 있는 분들에게는 자신의 얘기를 알아듣는 이에게서 친절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작은 위안이 되지 않을까하는 알뜰한(?) 착각을 하며 나는 오늘도 야근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