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태식 칼럼](63)거래처를 다시 부산으로

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2015-10-07     영주일보

전술한 바 있지만 내가 광주와 직거래를 하면서 자전거 원가를 싸게 하는데는 성공했지만 타업자들도 이런 사실을 알게 되어 광주로 거래를 하면서 나와 대등한 조건이 되자 나는 수송이 유리한 부산으로 거래처를 옮기는게 유리하다고 생각되어 부산으로 나가 자전거 도매상하고 협상을 벌였다. 광주도매상의 물건단가계산서를 제시하면서 “광주와 동일한 가격으로 물건을 공급하라. 앞으로 한 푼도 외상안한다. 당신네가 자청하여 외상 준 것은 정말 고마웠지만 외상 않겠으니 현찰을 받고 몇 달 이자만 놓아도 당신이 얼마나 이익이냐. 남보다 싸게 달라느냐. 같은 값으로 팔라는 것 아니냐.”하고 따졌다. 그래도 광주단가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닌가. 자존심에 불을 질렀다. “당신네가 양심적으로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고 제주업자를 바지저고리로 생각하여 오랫동안 바가지 씌우던 생각을 지금도 갖고 있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당신은 자존심도 없고 자기 위치도 모르는 장사꾼이다. 부산이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고 인구나 시장성이나 광주와 비교도 되지 않는데 광주보다 물건 구입하는데 단가면에서 월등히 떨어진다면 이것은 부산시민의 위신 문제고 그 지역을 대표하는 도매상으로는 무능하고 따라서 창피한 일이다. 안그러냐. 광주보다 비싸야 할 이유를 말해보라” 하였더니 한참있다가 정말 몇십년 도매상을 한 자부심이 여지없이 무너지는지 오기가 발동하였는지 좋다는 것이었다. 외상은 절대 안되고 물건주문량도 늘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두 말 않고 “좋다. 내가 약속을 안지키면 두 번 다시 상대 말라. 그리고 내가 위반하는 날 나는 장사 그만두는 날이다”하고 물건을 주문하고 값을 치르고 돌아왔다. 그러면 타업자보다 나는 운임에서 이익을 보게되고 화물이 손상되는 일이 줄어들게 되었다. 나는 항상 운임 적게 든만큼 물건을 싸게 팔 수 있고 그리고 많이 팔 수 있으므로 계산이 맞게 된 것이다. 그들이 말한대로 “기술이나 자본없지, 장사경험 없지, 건강 나빠 망할 것이다”하는 말은 빗나가게 되었다. 나는 외부에 나가도 도박은 않으니 목포에서 한 번 당한 것 말고 사고가 없고, 건강이 나쁘니 술을 마시지 않아서 거래처에 부담을 안준다. 또 요리집 색시집 나들이 않으니 자본 까먹는 일이 없고, 제정신에 물건 구입하니 정확하고 시장의 변동에 대처해서 유리한 쪽으로 신속히 옮기고, 지혜와 지식을 동원하여 상대방을 설득하는 머리를 쓰니 나의 처음 계획은 실천으로 입증되고 있었다.

그런데 H형은 며칠간 어쩐지 편한 것 같지 않더니 하는 말이 돈을 관리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이다. 아마 돈관리 수당을 별도로 생각해주어야 한다는 뜻인지도 모르나 이걸로 투정부릴 줄은 몰랐다. 말인즉 돈이 장부보다 부족하여 변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억지라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 완전히 믿는다고 생각하고 상대를 털끝만큼도 의심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이런 태도가 늘 약점으로 나타난다. 세상에 그리 믿을 사람이 많지 않은데 웬만하면 믿어버리니 낭패볼 때가 있다.

그렇다. 이번 일도 H형을 믿고 금전관리를 맡기다보니 터져나온 H형의 불평이다. 그래도 나는 H형 보고 수고스럽지만 금전상 큰 착오는 생길리 없으니 계속하세요 하고 부탁했다.

왜 큰 착오가 없냐하면 물건을 팔고 난 다음 단순히 노트에 액수를 적었다. 저녁에는 장부에 의한 금액만 예금하고 있었다. 손님이 많고 바쁘고 자잘한 돈을 받고 즉시 즉시 장부에 정확히 기록하지 못하는 때가 있다. 돈은 받았지만 장부에 기록을 안해놓으니 장부상보다 돈이 남을 가능성은 많게 된다. 나는 평소 생각한  이 말은 아니하고 수고하시라고 하였다.

내가 무슨 말을 잘못하여 사이가 벌어지면 동업하더니 결국 불화가 생겼다고 고소해 할 사람도 많고, 나는 동업하다 깨어졌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는 관습상 동업이 극히 어렵다고 한다. 그러니 더욱 나는 동업은 가능하고, 성공했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

결국 동업은 성공했다. H형이 하루 영업을 끝내고 내 앞에서 돈을 모두 꺼내놓는 것이었다. 이 주머니에 있는 것은 집에서 올 때 가지고 온 돈이고, 저 주머니 것은 무슨 돈이고 해서 떼어내고, 남는 돈과 장부를 대조하니 삼백원이 남는다. 내 생각은 적중했다. 한 달이면 1만여원이 남는 셈이다. 몇 년치를 합치면 거액이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나올 때 월급이 1만원이었으니 장부상에 기록 못하고 남는 돈은 H형네 식구의 한달 생활비를 하다가도 남는 돈이다. 이렇게 되면 나보고 돈 관리를 하라고 해야 되는데 일언반구 가타부타 말 없이 돈을 챙겨 넣고, 그 후로는 돈을 취급하여 자기가 곤란했노라고 하는 말은 동업이 끝날 때까지 하지 않았다. 나도 두 번 다시 거론치 않았다. 왜냐 동업을 잘하려면 내가 상대방보다 단 일분이라도 더 노력해야 하고 이익 분배는 내가 상대방보다 단 일원이이라도 적게 받겠다고 생각해야 다툼이 없다. 나는 이 원칙을 고수한 것이다. 상대방이 상점을 휘청거리게 하지 않은 한 작은 욕심은 받아주었다.

H형이 동업하자고 안했으면 내가 어떻게 자립할 수 있나 하고 나는 언제나 상대방에 대하여 호감과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 또 나는 언제 어디서나 동업자인 H형에게 듣기싫은 말이나 불리하게 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