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태식 칼럼](24)무허가 집을 팔고
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2015-05-22 영주일보
그래서 무허가 집을 10만환 가깝게 받고 팔았다. 전에 날 찾아와 국수 잘못 끓였다고 논두렁에 부어 버리고 간 친구가 하숙하고 있는 하왕십리의 같은 하숙집에서 따로 방을 빌었다. 그 친구는 고향 친구와 둘이 한 방을 사용하고 나는 혼자였다.
학원에 가서 강사의 설명을 들을 때는 머리 속에 꼬박꼬박 들어오는 것 같은데 집에 돌아와 보면 기억에 남는 것이 없는 것이었다. 강의도 처음 몇 십분은 듣다가 시간이 지나면 졸음이 쏟아져 도저히 졸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이젠 내가 정상이 아님을 자각할 수 있었다. 하숙집에서 편히 지내는데도 몸이 붓는 것이다. 기억력이 감퇴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진척이 없었다. 정말 분통이 터졌다. 나는 이렇게 파멸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엄습하여 전율을 느끼게 했다.
하루는 친구가 돈을 꾸어달라고 해서 꾸어줬다. 며칠이 지나 그 친구 집에서 돈을 송금해 온 것 같은데 갚지를 안하기에 달라고 했더니 엉뚱하게도 돈을 갚았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돈이 생명처럼 귀하고 내년 봄까지 견디려고 절약하고 몇 번씩 계산하여 꿰어 맞춘 것이어서 착오가 나면 안 되는 돈이었다. 나는 받은 적이 없었다. 그 돈이 없으면 내년 봄까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절체절명의 재산이었다. 왜 돈을 받고도 안 받았다고 하겠느냐고 말해봤지만 막무가내였다. 앞이 캄캄했다.
공부는 잘 안되고 정신적 혼란으로 집중이 안된다. 그 친구는 날 보고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하였다. 돈 잃고 사람 병신된 것을 생각하니 불쾌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얼마 안 있어 그 친구는 관훈동으로 방을 정해서 떠나버렸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정말로 친하여 교내에서 소문이 날 정도였는데, 환경과 처지가 너무 차이가 나고 보니 친한 친구도 자연히 멀어져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