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태식 칼럼](22)촌놈, 가정교사가 되다
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2015-05-18 영주일보
오후에 가르치는 일이었다. 그 집 딸이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아들도 있었다. 병현 친구가 자기 고모에게 잘 소개해서 얻어 준 자리였다. 공부를 가르치는데 학생이 열심히 하지도 않고 말을 잘 듣지도 않았다. 나는 어른 말이면 순종하고 거역하면 안되는 것으로만 알아왔다. 부모님께 말대꾸하면 사정없이 매를 맞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이 때문에 어린이는 그저 선생님 말씀이다 하면 정말 고분고분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었는데 이게 빗나간 것이었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부유한 집 자식들은 부모의 보호가 지나치고 아무리 응석을 부려도 받아주기 때문에 자기 마음에 맞지 않으면 투정부리고 말을 잘 듣지 않은 것을 알았다.
나는 차림새가 형편없이 남루하고 내 몸에서는 땀냄새가 나고 자주 세탁을 하지 않아서 옷냄새가 고약했을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거부감과 멸시하는 마음이 들었을 게 아닌가. 그런데다가 나는 처음 해보는 가정교사라 아이의 비위를 맞춰줄 줄도 모르고 공부를 가르치는 방법도 서투르니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사실을 먼 훗날에야 깨닫고 마음 속으로 그때 나 자신을 파악하지 못했음을 무척 부끄러워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 나는 그때 정신적으로 병이 깊어져 있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해서 한 이십분 지나면 몸이 말을 듣지 않아서 제대로 가르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살을 꼬집고 머리를 쥐어박아도 정신을 못차렸다. 이런 일이 매일 반복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이중고를 치르고 있었는데 하루는 유원지에 가서 놀다 오라는 주인의 허락이 있었다. 나는 아는 곳이라고는 정릉 유원지 밖에 모르니 그곳으로 놀러갔다. 가는 길에 아이에게 내가 지은 집을 보여주고 내가 여기서 산다고 말한 것이 결정적 실수였다.
경국사 등 사찰을 구경하고 돌아갔는데 그 다음날부터 아이들은 더욱 나의 말을 안듣는 것이었다. 내가 사는 곳이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짐승이 사는 우리쯤이라고 아이들은 생각한 것 같다. 충무로의 좋은 집, 좋은 부모님, 좋은 음식과 잠자리, 이런 환경에서 자라나는 아이를 가르치려면 가정교사도 격에 맞는 차림과 품위가 있어야 하는데 선생이라는 자격과 너무나 동떨어진 나의 환경을 보고 선생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음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두 달만에 가정교사도 그만두었다. 이제도 이 경험이 나의 인생살이에 많은 참고가 되고 있으며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을 부끄러움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