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태식 칼럼](18)친구 김병현

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2015-05-08     영주일보

서울에 있는 동안 늘 마음의 위안이 되고 만나면 마음 편히 대해주는 푸근한 친구가 김병현이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다. 그 형이 나의 초등학교 동창이므로 그렇게 친해질 여건도 아닌데 우연찮게 용담동 부러리 그의 집을 몇 번 가본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 할머니, 부모님 모두가 매우 순박한 분들이었다. 가진 것은 없지만 사람을 사랑하시는 분들이었는데, 서울로 올라온 후에 마포 공덕시장 가까운 곳에 허름한 기와집을 마련하시고 거기서 가내공업으로 가방제조업을 하고 있었다. 풍족하지 못한 처지였지만 내가 찾아가면 반갑게 대해 주고 식사도 같이 하도록 해주었다. 차림새가 남루하고 땟국이 흐르고 내 몸에서 고약한 냄새가 풍길 것인데도 싫은 기색을 한번도 안했다.

병현이는 얼마나 마음씨가 착한지 마포에 신도극장이라는 삼류영화관이 있는데 거기로 데리고 가서 가끔 영화구경도 시켜 주었고, 새 동전 50환짜리가 발행되었을때 그는 “너 이런 동전 봤냐? 너 돈 없는 것 같은데 가져.” 하면서 내가 사양해도 어거지로 내주머니에 넣어주곤 했다.

서울시내에 있는 극장도 그 친구 덕분에 들어가 본 적도 있었다. 한번은 국도극장에 가본 적도 있었다. 나는 상상의 세계에서나, 잡지 속의 사진이나 길을 지나다 영화포스터에 실린 국도극장, 이름만 들어도 재수 좋은 날이다고 생각했던 국도극장에서 ‘왕중왕’이라는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행운도 그 친구 덕분에 누릴 수 있었다.

내가 충무로 입구에서 음반가게를 하는 그 친구의 고모댁에서 가정교사를 두 달간 하게 된 것도 병현이가 나를 ‘오현고에서 3년간 특대생이고 서울법대에 떨어졌으나 재수하는 중’이라고 소개해줘서 이루어진 직장이었다. 이제도 이 친구와는 가깝게 지내고 항상 마음 속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 친구는 나에게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로 어떤 때는 삶의 의욕을 주는 구세주로 다가왔다. 나는 이제까지 그에 대한 보은을 한번도 못했다.

삶과의 처절한 투쟁, 병마와의 끊임없는 사투를 하며 살아오면서 마음의 여유나 육체적 평안을 누린 적이 없다. 정신적 여유나 주위를 돌아볼 형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는 좀 나은 형편이나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그 때의 고마웠던 일들도 말도 못하고 인사 한 번 제대로 못했으니 미안스런 일이다. 한번은 제대로 대접해야 한다. 너무 큰 빚으로 남으면 나는 구천에서도 너무 괴롭게 될 것이다. 은혜를 받았으니 반드시 작은 정성의 표시로라도 보은의 뜻을 보일 줄 알아야 사람 아닌가. 그런데 몇십 년이 흘러도 생각만 있을 뿐 실천하지 못했으니 이 또한 얄팍한 자기변명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