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비양보건진료소, 그 후 20년

허태은 제주시 서부보건소

2015-05-07     영주일보

그 후 20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흘러가버렸다.

그 20년 전의 비양도의 모습이 갑자기 눈앞에 다시 살아나 꿈틀거린다. 본섬에서 떨어져 더 낙후되고 열악한 환경이 지배했던 곳. 당시에 비양보건진료소는 선착장에서 내려 서쪽 방향으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 외딴 집에 자리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외로워도 외로울 수 없었던 근무지였다.

그래서일까, 소박한 주민들은 정이 넘쳐났고 오히려 본섬을 바라보는 눈에는 남다른 희망이 보이기도 했다. 그 희망은 어느덧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겐 진짜 섬의 모양을 갖춘 곳은 ‘이 비양도 밖에 없다’는 입소문에 도항선의 입출항 횟수도 당연히 더 늘어난 이유의 하나일 것이다.

1994년 4월에 발령받았던 곳, 비양도에 다시 들어와 근무를 하다 보니 그 20년이라는 시간 속에는 아픔이 스며들어 있었다. 실제 거주하는 주민들은 90여 명 정도인데, 세월의 흘러간 흔적처럼 개개인마다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관절염 등 만성질환자가 많이 늘어났다는 점, 더구나 어느 한 개인에게서는 세 가지 이상의 질환이 복합적으로 있다는 것이 유독 마음에 걸렸다. 비껴갈 수 없는 세월 속의 인간의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지만 이제는 20년 전의 외딴 집이 아닌, 선착장 바로 앞에 깨끗하고 번듯하게 세워진 비양보건진료소가 그 진가를 발휘해야 할 때라고 감히 생각해본다.

물결을 가르며 다가오는 도항선! 그것이 정답이 아닐까? 1일 3회 이상 입출항하는 도항선을 바라볼 때마다 진료소 건물을 휘감는 것 같은 기운을 느낀다. 다가온다는 것, 아니 멀리 있다가도 어느 결에 손짓하며 방긋이 다가서는 제주의 정(情)처럼, 도항선의 자세야말로 비양보건진료소가 본받아야 할 소임이라고 거듭 생각해본다.

안전하고 더 안전하게 그리고 편안함을 먼저 안겨드리고자 노력하는 자세야말로 비양보건진료소와 도항선이 일맥상통한다고 보아진다.

섬 속의 섬, 비양도에는 주민들과 관광객들의 쉼터 역할을 하는 보건진료소가 살아 숨 쉬고 있다. 어쩌면 청정 비양도의 당당한 얼굴이기도 하다.

오늘도 멀리서 도항선이 다가오고 있다. 아니다, 비양보건진료소와 도항선은 먼저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그 믿음에 활짝 웃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