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태식 칼럼](10)일 속에 묻혀 살다
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2015-04-20 영주일보
4·3사건이 일어난 그 해에 어느날 밤 오라동 남쪽에서 경찰과 산쪽 패거리들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졌다. 총알이 상대방을 향해 빗발같이 날아갔다. 나는 먹돌새기 외삼촌댁 마당에서 이 광경을 보았다. 밤이니까 총알 날아가는 것이 반딧불처럼 번쩍이며 상대쪽을 향해 포물선으로 날아가는 것이었다.
연동에서 살 때 공산주의 국가가 되어야 잘 산다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공산화가 되어 굶는 일 없고 못사는 사람도 없고 높고 낮은 사람 잘나고 못난 사람 없이 평등한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싸움도 산(山)사람이 이겼으면 하고 마음 속으로 빌었다. 나이 들어서야 공산주의 나라가 되면 정말 큰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세뇌 즉 철부지가 받은 지식이 머리에 박혀있어 공산주의자가 이겼으면 하고 바랬던 것이었다. 세뇌교육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군경과 산사람들과의 교전이 있는 후 이튿날이 되면 빨갱이가 몇 죽고, 아군이 몇 명 희생되었다는 소문이 퍼지곤 했다. 그런 소식이 뜸해지면서 산에 갔던 사람들이 군경의 선무공작에 의하여 집단적으로 귀순하여 내려오니, 이들은 주정공장등지에 수용되었었다가 얼마 후에 고향으로 돌려보내졌다. 그러나 집이 다 불타버려 살 곳이 없었다. 그래도 주민들은 임시 집단 거주지를 마련하고 돌로 성을 쌓아 끝까지 공격하는 공비. 그 습격과 약탈에 대비해야 했다. 주민들은 번갈아가며 보초를 서야 했고, 경찰관들도 무장을 하고 요소 요소에 주둔했다. 4·3사건은 그러면서 차츰 막바지로 가고 있었다.
정드르로 이사간 지 일년 후, 우리는 먹돌새기에 몇 마지기 밭을 사고 집을 짓게 되었다. 어머니의 수단과 능력이 비상하기도 하였다. 그 어려운 사태 속에서도 땅을 살 돈을 마련하셨으니 말이다. 살 집을 짓기 위해 우리는 달구지로 옛 집터에 가서 매일 돌을 실어 오고 산에 가서 지붕 덮을 새(띠)를 베어오고, 진흙을 이겨 축(칸막이벽)에 바르고 퇴기를 엮어 흙을 발라 칸막이를 만든다. 으스름 달밤에도 열심히 일을 하여 어느 정도 집 형태가 갖추어지니 이사를 했다. 안정된 보금자리를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