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당 오백, 절 오백, 수많은 성소(聖所)가 불태워졌다고 합니다.
김동섭 설문대여성문화센터 팀장
이 목사는 우선 당과 절마다 돌아다니며 그 신령을 보이라 하고, 신령을 보이지 못하는 곳의 당과 절은 곧 불을 질러 파괴해 버리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 때 대부분의 당과 절들은 목사(牧使)에게 신령을 보이지 못하여 거의 파괴당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신령이 센 당들은 신령을 보여 파괴를 면하게 되었다고도 합니다.
가령, 제주시 삼도동에 있는 각시당은 신령이 약간 모자라서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이 당에 이목사가 가서 신령이 있으면 보이라 하고 굿을 치게 하였습니다. 굿을 할 때 세우는 큰대를 눕혀 놓고, 굿을 쳐서 그 대가 저절로 일어서면 신령이 있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신령이 없다고 단정하겠다는 것이었다. 심방은 이레 동안 굿을 하면 신령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고 굿을 시작하였습니다. 사흘 나흘이 되어도 눕혀 놓은 큰대는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레째가 되는 날은 요란스러운 굿 소리와 함께 이 큰대가 달달 떨면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약간 일어서다가 벌렁 쓰러지고, 두 번째 세 번째 회수를 거듭하면서 차츰차츰 더 일어서서 마지막엔 반쯤 일어서서 달달 떨다가 일어서지 못하고 벌렁 쓰러지고 말았다. 이것을 본 이 목사는 신령이 없는 것이라 하고 곧 불을 붙여 파괴해 버렸습니다. 이처럼 이때 약간 신령이 모자라서 큰대가 반쯤 일어서다가 쓰러져서 파괴당한 당(堂)이 수없이 많았다고 합니다.
표선면 토산당의 경우는, 이 목사가 같은 방법으로 신령을 보이라고 하니 각시당과는 딴 판이었다고 합니다. 심방이 이레 동안 굿을 해가니, 눕혀 놓은 큰 대가 저절로 곧장 일어설 뿐 아니라, 스스로 걸어서 제주시 성안으로 동문 바깥 으니루까지 와서 쓰러졌다고 합니다. 그러자 이 목사도 이 당엔 신령이 있는 게 분명하다하여 파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현실 속에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한계(限界)를 극복하고자 우리들은 초자연적인 존재인 신(神)을 찾았는지도 모릅니다. 화산섬 제주였기에 태풍의 길목에서 만나는 심한 바람, 많은 비로 인한 재해는 물론, 가뭄, 병충해 등으로 겪었던 기근(饑饉)의 고통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재해는 정도의 차는 있었지만, 해마다 찾아오는 일상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 선인들은 일만팔천의 신들을 당 오백, 절 오백에 모시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내일에 대한 불안함을 극복하기 위해 신을 찾았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민족의 합동단결을 우려하였던 일제에게 미신으로 치부되었던 것처럼, 먹을 것도 모자라는 현실에서 많은 제물을 차려서 신을 위하는 행위는 공공의 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먹고 사는 것만이 삶의 전부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루를 살아도 마음 편하게 살기를 바랐던 선인들의 하소연처럼, 마음의 위안(慰安), 불안의 해소(解消) 또한 중요한 덕목이었음을 가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