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제사가름, 각박한 삶의 터에서 조상숭배를 가능케 한 지혜의 산물입니다.

김동섭 설문대여성문화센터 팀장

2014-07-29     영주일보

지금부터 30년 전까지만 해도 제주에는 ‘벌초방학’이라고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절기(節氣)상 새 풀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 한로(寒露)를 지나, 추석 전에 조상의 산소를 찾아 깨끗하게 단장하는 것을 자손된 도리로 여겼던 우리 제주인들의 미풍양속이었습니다. 이때가 되면 일본에 사는 자손조차도 고향을 방문하여 벌초의 행렬에 참가하였던 것입니다.

제주인에게 조상(祖上)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를 이 땅에 사람으로 오게하였던 존재, 불확실한 미래이지만 살아볼만한 곳으로 담보받을 수 있도록 무한(無限)의 보호를 아끼지 않는 존재, 그런 존재가 조상이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우리 제주에서는 장자상속(長子相續)을 통해 맏이를 중심으로 윗사람을 공경했던 도리로 제사를 모시는 육지와는 달리, 균분상속(均分相續)을 톻해 재산을 나누고, 조상의 제사도 형제들이 나누어 모시는 ‘제사가름’의 풍습이 전해오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형제가 많은 집안에서는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의 기제사는 물론 명절에 모시는 명절의 제사도 나누어 모심으로서, 제사로 인한 부담을 나누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제사 때마다 일가 방상 모두가 참례함으로써 혈연의 인연을 더욱 돈독히 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제사를 치르기 위한 많은 제물의 준비는 제사를 맡은 가정의 몫이었습니다. 신(神)을 청하여 올리는 진설물(陳設物)이었으므로, 정성을 다해 떡과 과일, 나물, 해어, 적 등을 준비하였습니다. 제사를 준비하는 내도록 큰소리로 다투지도 않으며, 비린 것도 보지 않도록 집밖으로 출입도 자제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이웃과 나눌 수 있도록 상외떡도 만들었습니다.

그 집의 숟가락이 몇 개인지를 아는 처지의 관계라면 혈연(血緣)으로 구분하지 않더라도 이미 가족 이상으로 가까운 사이일 것입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누구나 치루어야 하는 혼․상례의 큰일은 물론, 1년을 주기로 반복했던 제사(祭祀)를 통해 주고 받았던 정(情)이라는 인연이 제주를 지탱해 온 소중한 밑거름이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처럼 척박한 제주에서도 혈연의 인연을 돈독히 하며 조상을 위하였던 의례로 제사가 유지되어온 것은 일만팔천의 신(神)을 모시며 각박함을 벗어나고자 노력했던 제주인의 마음속에 조상신의 보살핌을 원했던 간절한 바램 때문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농사를 지으며 어제를 살았던 우리 선인들에게 경험의 소중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의 창출 또한 제사를 통해 가능했다면 지나친 상상일까요? 균분상속, 제사가름의 전통은 혈연(血緣)의 강화는 물론, 지연(地緣)의 강화에도 기여하였기에,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더 잘 조상을 위하고, 혈연의 가치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지역공동체를 이루는 밑거름 역할을 하였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