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할아버지·할머니와 아이들이 함께한 10주간의 추억 만들기

이상섭 한경면사무소

2014-06-03     영주일보

제주도 내에서 고령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바로 내가 근무하는 한경면이다. 너른 땅과 풍족한 토양, 한적한 분위기, 때 묻지 않은 아름다운 자연 등 자랑거리도 많지만 도심과 떨어진 이유로 사회기반시설이 부족하여 노인들이 문화를 향유할 기회가 적은 것도 사실이다.

즐길 거리, 놀 거리 부족은 한창 자라나는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컴퓨터·스마트폰 게임으로 놀이문화가 획일화되고, 대면 커뮤니케이션과 야외활동이 줄어드는 문제가 지적되고 있지만 학교와 학원 외에 아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어르신들의 문화향유에 대한, 또 아이들의 놀이문화에 대한 니즈를 동시에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만약 아이들과 어르신들이 서로의 놀이상대, 친구가 된다면 어떨까?

이런 생각에서 우리는 놀이와 체험을 매개로 할아버지·할머니와 아이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프로그램을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해서 참가를 신청한 40명의 어르신과 아이들을 일대일로 ‘짝’을 맺어주고 체험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하는 『조손(祖孫)이 함께하는 전통문화 교실』이 생겨났다.

참가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지금까지 우리는 5회에 걸쳐 천연염색을 체험하고, 인형극 소품을 만들고, 전통장을 담그고, 보리빵을 굽고, 전통 갓을 만들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 과정에서 어르신들은 아이들을 이끌고 보살피며 성취감을 느꼈고, 아이들은 자연스러운 접촉을 통해 노인에 대한 공경심과 친근감을 키웠다.

무엇보다 큰 보람은 어린이들과 어르신들 간의 우정을 확인한 것이었다. 처음 모임이 있던 날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 울음을 터트리던 연수는 이제 차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짝’할머니를 찾아 달려온다. 하루는 태규가 찌푸린 얼굴을 하고 있길래 이유를 물었더니 다음 주 한자 검정시험 때문에 프로그램에 참가할 수 없어서 걱정이란다. 4학년인 혜진이는 버스 안에서 어르신들과 한 주 동안 학교에서 배운 식물에 대해 재잘거리며 이야기를 나눈다. 문화적 약자라고 할 수 있는 노인과 어린이 세대지만 서로 친구가 되는 순간 더 이상 약자가 아니었다.

프로그램은 이제 절반을 지나왔고, 앞으로 5주가 남아있다. 이 10주 동안의 일정은 서로 간의 소통과 만남의 기회가 부족했던 노인·어린이 세대가 함께 만나 추억을 만들어 가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들의 만남의 인연이 앞으로도 이어져 지역공동체 형성에 작은 씨앗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