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영 칼럼](32)허공
2014-02-17 양대영 기자
허공
-신경림-
하얀 눈 위에
작은 발자국 찍혀 있다
빨갛고 가녀린 발이 뿅뿅뿅 밟고 갔으리
언덕이 끝나는 곳에서
발자국은 끝나고
새파란 허공에
해맑은 새 한 마리 실루엣으로 찍혀 있다
어쩌나
내 발자국 끝나는 곳에서 둥실 떠올라
나는 저처럼 하늘에
그림자로 남는다면…
해말기는 커녕
검고 칙칙한 얼룩이 되어
누더기로
허공에 남는다면…
그것도 해맑은 새 한 마리다.
시를 읽노라면 잘 그린 그림, 겨울의 풍경이 선하다.
하얀 눈, 빨갛고 가녀린 발, 새파란 허공, 해맑은 새 한 마리 등의 시어가 시를 한결
순결하게 만든다.
거기에 만약 시인이 떠올라 하늘에 실루엣으로 남는다면 해맑기는커녕 칙칙한
누더기가 되지 않을까를 걱정하고 있다. 이를 어쩌나?
깨끗이 살고자 하는 시인의 삶이 녹아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