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결같은 마음으로...”
박정화 서귀포시 관광진흥과
2014-01-14 영주일보
지시를 받은 다음날이 휴무여서 아침 일찍 산방산으로 향했다. 산방굴사 입구에서 커피 한 잔을 사며 600년을 산 소나무가 있는 곳이 여기 맞느냐고 묻자 그 곳의 점원은 그렇게 오래된 소나무가 있냐며 내게 되물으셨다. 모두의 무관심이 재선충병의 확산을 키웠다는 뉴스앵커의 말이 뇌리를 스치는 순간이었다.
무작정 산방굴사를 향해 산에 올랐다. 정상으로 가는 길의 입구에서부터 발목이 휑하니 잘린 소나무들의 밑둥이 징검다리처럼 열 맞춘 듯 빼곡하게 하얀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푸르게 보여야 할 산 속이 잘려나간 나무들의 빈자리를 채운 햇살로 퍼져 들어 뿌연 잿빛으로 보였다.
600년 동안 산방산의 정상에서 송악산과 묵묵히 말없이 대화했을 그 소나무를 마주치는 순간 그 위엄한 자태에 일단 놀란 후 이내 가슴이 먹먹해졌다. 할 말을 잃었다. 그저 ‘어떡해...어떡해...’라는 세 글자만이 머릿속을 이러 저리 돌아다녔다. 그동안 제주곳곳을 누비며 돌아다니면서도 산을 바라볼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했다. 나의 무관심, 우리의 무관심은 소나무들에게 같은 빚을 지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사람이 아닌 작은 곤충의 유충이 이 재앙의 시작이긴 하지만 분명 우리의 무관심이 재앙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수습을 마치고 관광진흥과로 소속을 옮겨 나는 올레지기가 되었다. 제주의 상징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올레길이 소나무 고사길이 되어가고 있다. 전국의 푸른 숲을 갉아먹고 있는 재선충은 결국 유네스코 3관왕의 아름다운 제주까지 병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관광객은 비행기에서 제주를 내려다보며 온 숲에 단풍이 든 줄 알았다고 말했다.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앞으로 올레길과 더욱 친해져 자주 접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더욱 마음의 짐이 무겁다.
아름다운 보물섬, 동북아의 중심지 우리 제주도가 언제까지라도 푸르고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할 수 있도록 나부터가 그리고 우리 모두가 늘 우리 제주를 아끼고 사랑하며 관심을 가지고 보살펴야 할 것이다.
제2의 재선충과 같은 재앙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그리고 600년을 살다가 하루아침에 작은 조각품이 되어버린 산방산 고송의 안타까운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한결같은 마음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