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우리가 방문의 기록을 남기는 이유는?

박은희 제주시 서부보건소 방문간호사

2013-11-12     나는기자다

바야흐로 겨울의 초입이다. 어쩌면 지독하게 사람 냄새가 더 그리운 시기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딱히 계절을 구분하지 않더라도 우리들, 방문간호사들은 그 없어져 가는 사람 냄새를 떠올리며 서부보건소에 출근함과 동시에 외롭고 쓸쓸한 어르신들의 각 가정으로 향한다. 그곳이 우리들의 일터이자 곧 또 다른 치유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사례
K할머니(81세)를 처음 뵈었을 때, 고혈압 약을 복용하고 관절염을 앓는데다 거동이 불편하였다. 더구나 오른쪽 눈은 실명상태였으며, 할아버지는 3년 전에 폐암으로 돌아가셔서 홀로 사신다. 육지에 두 자녀가 있지만 힘든 생활고로 거의 왕래가 없다고 하셨다. 방문 첫날, 건강력 체크를 하는데 식후 혈당치가 296mg/dl라서 매우 높게 나왔다고 했더니 무척이나 놀란 표정이었다. 결국, 다음날 인근 병원에 찾아갈 것을 권유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이 지나 다시 방문했을 때, K할머니는 병원에서 당뇨약을 처방받아 복용하고 계셨다. 그 상황에서 우리들은 당뇨에 대해 집중관리를 해드리면서 합병증에 대한 교육, 체크리스트를 통한 식이요법 및 영양관리, 관절 통증 완화를 위한 운동교육, 보건지소 한방진료서비스 연계, 독거노인관리사 방문 연계 등의 알찬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을 한다.

방문이 지속되던 어느 날, K할머니의 얼굴이 많이 밝아지시고 건강도 되찾아 가는지 혈색도 좋아 보였다. 그러나 그리움이 가득한 눈이었다.

“늙으민 빨리 죽어사주. 젊은 사름덜 영 고생시키민 안되는디... 자식들도 나 몰라라 허는 나 같은 늙은이를 영 찾아와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미안한디, 건강도 살펴주고 얘기도 들어주니 이 신세를 어떵 갚을거라게.”
“아니우다게. 약은 꼭 잘 챙겨 드시고, 음식은 호끔 싱겁게 드십서.”
할머니와의 대화는, 대문을 나서는 우리들 방문간호사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문득 우리들의 방문의 기록은 ‘마음에 남기는 따뜻한 말 한마디였음을’ 깨달은 것일까. 이 각박한 세상에서 오히려 우리들이 송구스럽게도 치유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에게 되묻고 싶은 순간이다.

2007년부터 지역 내의 건강위험 요인이 큰 의료취약가구를 대상으로 벌이는 방문건강관리 서비스!

제주시 서부보건소에서도 지역주민의 건강증진과 함께 건강문제가 있는 취약계층에 대해 방문간호사가 직접 찾아가 개인별 맞춤형 보건의료서비스를 펼치고 있는 사업으로서, 오늘도 보건사업의 최일선에서 그 맡은 바 책무를 다하고자 정성껏 노력을 기울이려고 한다.

최고의 명약은 ‘웃음’이라는 말이 있다. 이 웃음은 진심에서 우러나는 대화로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유난히 추울 거라는 올 겨울, 어르신들에게 그 따스한 온기를 전해주기 위해 닫혀 있는 마음의 대문을 두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