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마와 헌마공신 김만일의 공적에 대한 역사적 고찰 심포지엄 개최
국난에 헌마(獻馬)로 우국충정(憂國衷情)한 공신(功臣)-400여년 만에 재조명
강민수 교수는 “임진왜란 당시 전마가 부족한 정부에 전마를 바치고, 그 뒤에도 광해군과 인조대에도 정부의 요청에 따라 계속해서 말을 제공하여 종1품 숭정대부를 제수받았다.”면서 이는 “역대 제주인으로는 가장 높은 벼슬을 받게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권무일 소설가는 “김만일이 준마의 씨를 보존하고 끊임없이 개량하여 국난에 대비한 헌신과 우국충정은 말과 전쟁의 역사, 아니 한국의 역사와 세계사에 기록되어야 할 쾌거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강제훈 교수는 “ 말과 관련하여 중앙 정부와 관계하는 과정에서 고위 관원의 지위를 획득했다는 점에서 김만일은 조선시대 제주지역의 역사성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시인 채바다, 문학평론가 양영길, 역사학자 김일우, 제주마문화연구소장 장덕지, 제주도축정과장 조덕준 등이 패널로 참여하여 “제주마와 헌마공신 김만일의 공적”에 대한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헌마공신(獻馬功臣) 김만일(金萬鎰. 1550∼1632)은 조선의 개국공신 김인찬의 8세손이며 제주도 입도조 김검룡의 7세손으로 1550년 제주 남원읍 의귀리에서 평범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한라산 동쪽 고원지대에서 한 마리의 준마로 시작해 일만 마리의 대목장으로 만든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또한 그는 말이 국력의 상징임을 알고 말의 종자를 끊임없이 개량하여 전마, 산마를 대량으로 번식시켰고, 젊은 청년들을 모집하여 말을 다룰 수 있도록 기마훈련을 시키기도 하였다. 특히 부패한 관리로부터 종마를 보존하기위해 그는 일부러 말의 눈을 송곳으로 찌르고 말의 귀를 찢고 잔등을 칼로 긋기도 하였다.
김만일은 임진왜란, 정묘호란 등 국난이 끊임없이 발생할 때마다 자식 같은 말을 나라에 자진해서 바치기를 마다하지 않은 우국충정으로 헌마공신의 작위를 수여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