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마와 헌마공신 김만일의 공적에 대한 역사적 고찰 심포지엄 개최

국난에 헌마(獻馬)로 우국충정(憂國衷情)한 공신(功臣)-400여년 만에 재조명

2013-10-24     김수성 기자

사단법인 제주마생산자협회와 헌마공신 김만일기념사업회는 지난 23일 오후 2시 제주도농어업인회관에서 “제주마와 헌마공신 김만일의 공적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날 심포지엄은 농어업인회관 250석이 모자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참석하여 관심을 가진 가운데 김영문 전 제주도농업기술원장의 사회로 강민수 제주대 동물생물공학과 교수, 권무일 소설가, 강제훈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가 제주마와 김만일의 공적에 대한 주제발표를 했다. 

강민수 교수는 “임진왜란 당시 전마가 부족한 정부에 전마를 바치고, 그 뒤에도 광해군과 인조대에도 정부의 요청에 따라 계속해서 말을 제공하여 종1품 숭정대부를 제수받았다.”면서 이는 “역대 제주인으로는 가장 높은 벼슬을 받게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권무일 소설가는 “김만일이 준마의 씨를 보존하고 끊임없이 개량하여 국난에 대비한 헌신과 우국충정은 말과 전쟁의 역사, 아니 한국의 역사와 세계사에 기록되어야 할 쾌거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강제훈 교수는 “ 말과 관련하여 중앙 정부와 관계하는 과정에서 고위 관원의 지위를 획득했다는 점에서 김만일은 조선시대 제주지역의 역사성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시인 채바다, 문학평론가 양영길, 역사학자 김일우, 제주마문화연구소장 장덕지, 제주도축정과장 조덕준 등이 패널로 참여하여 “제주마와 헌마공신 김만일의 공적”에 대한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헌마공신(獻馬功臣) 김만일(金萬鎰. 1550∼1632)은 조선의 개국공신 김인찬의 8세손이며 제주도 입도조 김검룡의 7세손으로 1550년 제주 남원읍 의귀리에서 평범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한라산 동쪽 고원지대에서 한 마리의 준마로 시작해 일만 마리의 대목장으로 만든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또한 그는 말이 국력의 상징임을 알고 말의 종자를 끊임없이 개량하여 전마, 산마를 대량으로 번식시켰고, 젊은 청년들을 모집하여 말을 다룰 수 있도록 기마훈련을 시키기도 하였다. 특히 부패한 관리로부터 종마를 보존하기위해 그는 일부러 말의 눈을 송곳으로 찌르고 말의 귀를 찢고 잔등을 칼로 긋기도 하였다.

김만일은 임진왜란, 정묘호란 등 국난이 끊임없이 발생할 때마다 자식 같은 말을 나라에 자진해서 바치기를 마다하지 않은 우국충정으로 헌마공신의 작위를 수여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