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광복절특집(下)-야스쿠니 신사참배, 침략전쟁을 정당화 노림수
ㆍ참회와 반성의 모습없이 전쟁 범죄국가 오명 벗기 어려워
일본 정치인들이 매년 8월15일을 전후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해 주변국들은 물론 세계인들의 우려를 불러일으킨 가운데 극우 성향을 표방하는 아베신조 정권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아베총리는 수차례에 걸쳐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정당화 하는 발언으로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냉각시켜왔으며 지난달 19일 발행된 미국의 외교전문매체 ‘포린어페어스’ 의 인터뷰에서 야스쿠니(靖國) 신사와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가 마찬가지라고 강변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아베의 이 발언으로 미국 정계가 한바탕 소란을 일으켰으며 일본을 바라보는 미국 사회의 기류가 많이 바뀌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알링턴 국립묘지(Arlington National Cemetery)는 워싱턴 D.C.에서 포토맥 강을 건너 버지니아 주 알링턴에 있는 국립묘지와 위령 시설이며 1864년 남북 전쟁의 전사자들과 1,2차 세계대전,한국전쟁,베트남전쟁과 테러 희생자와 미국을 위해 희생된 인물들이 안장된 곳이며 노예 해방을 이끌어낸 민주주의 성역이기도 하다.
반면 아베총리가 알링턴 국립묘지와 동급으로 생각하는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는 어떤 곳인가?
야스쿠니 신사의 기원은 에도말, 막부의 개국에 반대하다 안세이 다이고쿠(安政の大獄)에서 희생된 사람을 기리는 사당이었으나 1978년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되면서 유명세를 탔고 전사자 유골이나 위패가 없는 246만6천5백여명의 전쟁 전사자 합사 명부가 봉안돼 있는 곳이 야스쿠니 신사로 전쟁 범죄자들이 묻힌 곳이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정부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독립된 종교법인의 하나로 독자적으로 관리되며 사무라이들의 전쟁으로 알려진 보신 전쟁과 세이난 전쟁 등에서 전사한 병사들을 안치한 곳으로 피의 역사를 숭배하는 곳이다.
또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주변국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큰 이유는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도조 히데키 등의 A급 전범이 안치되어 있어 대한민국이나 중국, 아시아 피해 당사국들은 일본인들의 반성과 참회 없이 침략 전쟁을 정당화 시키려는 일본 내각의 신사참배를 강력히 반대하는 것이 그 이유이다.
야스쿠니 신사에 묻힌 A급전범(영어: class-A war criminal, 일본어: A級戦犯 (エイきゅうせんぱん))은 포츠담 선언 6항에 근거, 극동 국제 군사재판소 조례 제5조항에 정의된 전쟁 범죄에 관해 극동 국제 군사 재판을 통해 유죄 판결을 받고 처형된 전범(전쟁을 일으킨 범죄자)들이다.
제40대 일본 내각총리대신에 임명된 대표적인 A급 전범 도조히데끼(東條英機 ,とうじょうひでき)는 당시 일본의 관례를 깨고 내무대신, 육군대신, 참모총장 등을 겸임하면서 육군 대장으로 승진하면서 군사독재 체제를 발판으로 일본 전역을 전쟁으로 몰아넣었으며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격을 명령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극동 국제 전범 재판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진 이타가키 세이시로(히라누마 내각 육군 대신)기무라 헤이타로(버마 방면 일본군 사령관)도이하라 겐지(제12방면 군사령관)도조 히데키(육군군인, 제40대 내각총리대신)무토 아키라(육군 군인, 제14방면군 참모장 (필리핀)마쓰이 이와네(상하이 파견군 사령관)히로타 고키(제32대 내각총리대신)등 7명은 1948년 12월 23일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처형된 전범 7명의 사체는 요코하마의 구보야마 화장터 (久保山火葬場) 에서 화장되었고, 유골은 미군에 의해 도쿄만에 버려졌으나 12월 25일에 고이소 구니아키의 변호사였던 자가 화장장 인부들을 시켜 은밀히 빼돌렸다가 가까이에 있는 고젠지 (興禅寺) 라는 절에 맡겼다.
1949년 5월 이즈 산의 고아 관음에 은밀하게 매장되었으며 이후 1978년 야스쿠니 신사에 사형 및 옥중에서 사망한 14명의 전범을 "쇼와 시대의 순난자"라는 이름으로 합사하면서 침략전쟁 피해 당사국들과 국제 사회로 부터 신사참배 논란이 시작되었다.
일본 정치인들과 각료들의 신사 참배 배경과 그들이 노리는 것은 무엇인가?
일본은 정확히 말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주변국들을 침략함으로써 수많은 피해 당사국 국민들에게 물질적 피해와 정신적 고통을 안겨준 전쟁 범죄국가이다.
일본 정치인들이나 각료들이 전쟁 범죄국가라는 오명을 벗어나려는 행동인데 반해 그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피해 당사국들과 시계 역사학자들의 지적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은 일본 정치인들이 전쟁 범죄국가 해석의 초석이 되는 포츠담 회담 내용을 왜곡시켜 정당화 시키려는 잘못된 역사관과 행동에서 비롯된다.
포츠담 선언 내용중 일본과 관련된 내용 중 서문으로 시작하는 제1-5항은 일본의 무모한 군국주의자들이 세계 인민과 일본 인민에 지은 죄를 뉘우치고 이 선언을 즉각 수락할 것을 요구 하고 있으며, 제6항은 일본의 군국주의 배제를, 제7항은 일본 영토의 보장 점령을, 제8항은 카이로 선언의 실행과 일본 영토의 한정 등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일본 정치인들이나 각료들이 틈만 나면 들고 나오는 일본 헌법 개정에 영향을 미치는 제9항을 보면 일본군대의 무장해제를 담고 있어 자위대 기본법에 한정된 군사력 증강이 어려워 법 개정을 통한 군비증강을 시도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제10항의 전쟁 범죄자의 처벌, 민주주의의 부활 강화, 언론, 종교, 사상의 자유 및 기본적 인권 존중의 확립등을 근거로 군사 독재 체제의 탈피를 유도하고 있으며 군수산업 금지를 통한 자유경제 시장을 위한 제11항의 군수산업의 금지와 평화산업 유지의 허가와 민주주의 정부 수립과 동시에 점령군 철수 수순을 담은 제12항, 그리고 이를 수용하고 무조건 적인 실행을 위한 일본 군대의 무조건 항복이 마지막 제13항이다.
그러나 일본이 선언을 묵살하자 미국이 8월 6일 히로시마에,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였고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공표하였으며 주변국들에 대한 침략 전쟁으로 엄청난 피해와 고통을 남긴 채 종식되었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전쟁은 종결 되었으며 이후 일본 헌법 제정에도 큰 영향을 미쳤고 주변국들을 침략하기 위한 군비 증강이나 주변국에 군대를 파견할 군사적 행동에도 엄격한 법률적 제한을 받고 있으며 야스쿠니 신사와 관련된 종교관련 법률 조항도 국가와 그 기관은 종교 관련 교육이나 활동을 할 수 없다는 일본 헌법 20조에 위배되는 행동을 일본 각료나 정치인 들이 하기에 비판을 받는 것이다.
결국 일본 정치인들과 각료들이 주변 피해 당사국들로부터 비판을 받으면서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는 이유는 침략전쟁을 정당화 하여 전쟁 범죄 국가라는 오명을 털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주변국들의 반발을 무시하고 강행하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일본 정치인들이 신사참배를 통해 전쟁 범죄국가 오명을 벗으려는 기괴한 행동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주변 피해 당사국 국민들에 대한 참회와 반성이다. 잘못된 우선순위를 바로잡지 않고 우스꽝스러운 광대놀음을 계속한다면 전쟁 범죄국가의 오명을 벗지 못하며 국제적 미아신세를 면키 어려울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