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영 칼럼](15)소금

2013-06-07     양대영 기자

소금


-이건청-


폭양 아래서 마르고 말라, 딱딱한 소금이 되고 싶던 때가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쓰고 짠 것이 되어 마대 자루에 담기고 싶던 때가 있었다. 한 손 고등어 뱃속에 염장질려 저물녘 노을 비낀 산굽이를 따라가고 싶던 때도 있었다. 형형한 두 개 눈동자로 남아 상한 날들 위에 뿌려지고 싶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이 딱딱한 결정을 버리고 싶다. 해안가 함초 숲을 지나, 유인도 무인도를 모두 버리고, 수평선이 되어 걸리고 싶다. 이 마대 자루를 버리고, 다시 물이 되어 출렁이고 싶다.


     
 
“사회에 빛과 소금이 되라.” 소금, 꼭 필요한 존재다. 음식점에서 최고의 조미료로서, 부패하지 않고 장기간 보관하기 위해 염장처리를 하는데도 역시 소금이다. 그래서 소금은 부패를 방지하는 역할 물질로 많이 사용해 왔다.

그런데 사회가 전연 썩지 않아 푸르디 푸르다면 어떻게 될까. 우선 도둑놈이 한 놈도 없다고 하자. 그러면 경찰관이 필요 없다. 힘들게 공부해서 관문을 통과하고, 사회정의의 사도란 검사도, 판사도 할일이 별로 없어진다. 살인자와 범법자들을 무죄라고 우겨대는 변호사도, 감옥도 그럴 것 같다.

그래서 한때는 소금이 너무 많으면 모든 게 절여져서 살아남을게 없기 때문에 적당히 썩고 부패해야만 빌붙어 먹고 사는 자가 많을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시인도 소금이었다가 지금은 딱딱한 결정인 소금상태를 벗어, 다시 바닷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절여진 사회가 싫어서일까, 아니면 체념한 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