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영 칼럼](8)세월
2013-03-07 양대영 기자
세월
-Robert Graves-
막막한 바다가 대리석 절벽을 두들겨
그 쪼각들로부터 오랜 세월 동안
꽃 같은 조약돌을 갈아낸다.
또는 막막한 풍우가 벌판을 헤매어
대리석 조약돌 같은 빛 고운 봉오리로
꽃은 솟아난다.
꽃의 아름다움은 세월, 죽음이 슬퍼하는,
조약돌의 아름다움도 또한 세월,
삶에 시달린.
피는 꽃이나 세월과 막막함에 얼룩진
꽃같이 매끄러운 조약돌을 찬미함은
쉬운 일.
세월은 시간의 경과, 모든 찍찍한 자물쇠와
녹슨 돌저귀를 사근이 녹이는
젖물 같은 것.
그 사랑스런 짝, 세월의 쌍둥이인 노년과 유년을
나는 마다할 수 있는가,
슬픈 막막함으로
또한 정성어린 꽃으로 노년을 위로하고
조약돌로써 유년을 달래며 나는 흔한 감사라도
하는 척하지 않을 것인가?
로버트 그레이브스(1895~1985)는 영국의 시인, 소설가. 세계대전의 체험과 오랜 영국적 전통을 통렬히 비판한 자서전 〈모든 것과의 이별〉(1929)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는 스페인의 마요르카에 정주하면서 시단을 떠나 고독하게 시를 썼다. 시론 〈하얀 여신〉(1948), 〈최고의 특권〉(1955)을 통해 시에 원초적인 외경의 감정을 회복하자고 주장하면서 현대시에 독창적인 개성과 전망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