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영 칼럼](7)소리가 생각나지 않는 꽃

2013-02-14     양대영 기자

소리가 생각나지 않는 꽃

-조정권-

 

호수에 앉아
무(無)속력의 수면에
취한다

잔잔히 퍼져오는
소 얼굴에 취한다.

저물 무렵에 올라오는
하얀 꽃에 취한다.

소리가 생각나지 않는
하얀 꽃에 취한다.

집으로 돌아오며
물 속 뿌리를 쥐고
잠들 물빛에 취한다.

찾아야 할 마음도 있지도 않거니와
따라야 될 마음도 없다.

『문예중앙』(2006, 봄호)

호수 가에 앉아 골몰히 여러 생각을 떠올리는 모양이다. 정지해 있는 호수를 보노라면 소 얼굴과 하얀 꽃에 취한다. 이전에 이 호수가에 목을 드리우고 물을 마셨던 소의 얼굴이 물속에 담겨 있다가 떠오르는 것일 게다. 저물 무렵에 올라오는 하얀 꽃에도 취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 하얀 꽃에 취하여 소리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오면서는 물속에 살고 있는 고유의 물빛 자체에도 취한다.

화자는 무엇엔가 깊이 취해있다. 산다는 것 자체가 선택의 길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 또는 특정 부분에 취해 있음을 ‘미침’에 비유할 수 있다. 무엇인들 미친 듯 하다 보면 그것은 취해있다는 것이다. 화자도 미쳐있다. 정지상태의 호수를 중심으로, 그 수면에서 잔잔히 퍼져오는 소 얼굴, 저물 무렵에 피는 하얀 꽃, 물 빛, 이런 것들이 심취한 모습을 잘 나타내준다. 너무 심취한 나머지 다른 것에 대한 생각은 아예 없다고 말한다. 꽃에 무슨 소리가 필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