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사퇴]정치인 안철수, 66일간의 기록

2012-11-23     나는기자다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가 지난 9월 18대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한지 정확히 66일 만인 23일 야권단일후보직을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에게 양보했다.

의사에서 IT사업가로, 거기서 다시 교수로 여러 영역을 옮겨가며 성공가도를 달리던 한 인물이 폭발적인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유력 대통령 후보 자리에까지 올라섰으나 일단 그 뜻을 접고 후보직 양보라는 용단을 내리는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에 견줄만했다.

스스로 말한 것처럼 안 후보는 자신의 의지가 아닌 "정치를 바꿔 달라"는 국민의 부름에 의해 대선판에 뛰어들었다.

뒤늦은 출마 결심 탓에 준비가 미흡한 부분이 있긴 했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기존 정치권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신선함을 선사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특히 캠프 내부에서는 안 후보 출마와 이후 캠프가 꾸려지는 과정을 학술적으로 분석해 일종의 사료로 남겨야한다는 의견까지 나올 정도다. 안 후보의 출마를 일종의 거대한 정치실험으로 평가하는 이들이 많다는 의미다.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으로 재직중임에도 잠재적 대선주자 후보군으로 인정받던 안 후보가 현실성 있는 강력한 대선후보로 평가받기 시작한 것은 올들어서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폭발적 지지세를 확보하며 본인의 뜻과는 관계없이 대선후보로 떠오른 그의 일거수 일투족이 언론은 물론 국민들의 집중적인 관심대상이 됐다. 그는 지난 7월19일 자신의 철학과 정책이념 등을 담은 책자 '안철수의 생각'을 발간하면서 대권주자로 나설 결심을 굳혔던 것으로 보인다.

안 후보가 마침내 대선출마를 선언한 것은 지난 9월19일. 안 후보는 서울 충정로 구세군빌딩 내 구세군아트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출마를 발표했다.

안 후보는 이 자리에서 대학원장직, 안랩 이사직을 사임하겠다고 선언하는 한편 "지금까지 국민들은 저를 통해 정치쇄신에 대한 열망을 표현해 주셨다"며 "저는 이제 이번 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함으로써 그 열망을 실천해내는 사람이 되려 한다"고 말했다.

또 "선거과정에서 부당하고 저급한 흑색선전과 이전투구를 계속하면, 서로를 증오하고 지지자들을 분열시키며, 나아가서는 국민을 분열시킨다"며 "그렇게 선거가 끝나고 나면 선거에서 이겨도 국민의 절반 밖에 마음을 얻지 못한다. 저부터 선거과정에서의 쇄신을 약속드리겠다"고 흑색선전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출마 기자회견에는 향후 캠프에서 직책을 맡게 된 조광희·금태섭·강인철 변호사를 비롯, 정연순 변호사, 유민영 대변인, 하승창 전 경실련 사무총장, 김민전 경희대 교수, 김호기 연세대 교수, 소설가 조정래씨 등이 대거 참여했다.

출마를 선언한 뒤 열흘 쯤 지난 9월말 안 후보는 서울 종로구 공평동 공평빌딩 5~6층과 9층 등에 수평·개방·소통이라는 철학이 반영된 진심캠프를 차렸다. 대선후보 중에는 유일하게 캠프 내에 콜센터를 마련해 하루에 300통씩 쏟아지는 전화 제보를 소화하기도 했다.

안 후보가 만든 정책네트워크 '내일' 역시 화제였다. 캠프 내 20여개 포럼이 국민의 의견을 대거 수렴하면서 상향식으로 대선공약을 마련했다.

이같은 과정을 도운 것은 민변 출신 변호사, 대학교수, 김근태계 정치인, 강금실계 및 박원순계 인사들이었다. 200여명에 이르는 캠프 내 자원봉사자들 역시 안 후보에게 힘을 보탰다.

이처럼 진용이 갖춰지자 안 후보는 본격적으로 정치행보를 시작했다.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정치혁신이었다. 안 후보 스스로 정치혁신을 통한 정권교체를 수차례 목표로 제시했던 만큼 대부분의 행보가 정치혁신과 관련된 것이었다.

잇따른 대학강연에서 차례로 정치권을 향해 정치혁신 과제를 제시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비롯됐다는 평이다.

정치혁신은 문재인 후보와 지난 18일 합의한 새정치공동선언문으로 결실을 맺었다.

새정치공동선언문에는 ▲대통령의 자의적 권한 남용 근절 ▲국회의원 이해관계 사안에 국민 참여·통제 의무화 ▲비례대표 확대 및 의원 정수 조정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상시 운영 ▲입법청원제도 강화 ▲중앙당 권한 축소 ▲강제당론 폐지 ▲국고보조금 제도 개선 ▲기초의회 정당공천 폐지 ▲상시국감 정착 등 내용이 포함됐다.

새정치공동선언은 정치권의 기득권 타파와 대의제 민주주의 강화, 직접민주주의 보완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의석수 조정의 경우 비례대표 의석을 확대해 과소대표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평을 들었고 입법청원제도 강화는 헌법에 보장된 청원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한다는 점에서 참여민주주의를 확대하는 방안으로 인식됐다.

국고보조금제 개선방안의 경우 보조금을 축소하는 대신 정당의 정책연구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평을 들었다.

정치권 안팎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내용이 담긴 공동선언이 도출됐다는 점, 이 방안들이 문 후보 집권 시 실제로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 등에서 새정치공동선언은 안 후보가 한국정치에 남긴 하나의 큰 족적이 될 전망이다. 지난 11일 발표된 정책집 '안철수의 약속' 역시 한국정치사에 남을 사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안 후보가 '차기정부의 최우선과제'로 꼽아온 격차해소 문제 역시 한국사회와 정치권에 숙제로 남겨질 전망이다.

그동안 안 후보는 수차례 이어진 연설에서 "우리 앞에 놓인 차기 정부의 과제는 격차 해소"라며 "안철수 정부의 제1과제 역시 격차 해소가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사람과 사람 간의 격차, 빈부·세대별·학력 격차,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 골목상권과 대형마트의 격차,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 호남과 영남의 격차 등 해소를 추진해온 것이다.

안 후보는 이같은 희망을 직접 실현하겠다는 꿈은 일단 접었다. 대신 그의 꿈들이 정치적 연대 대상인 민주당을 통해 얼마나 실현될지 관심이다.【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