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분신' 수행기사, 그들의 변심은 무죄?
최근 잇따라 폭로되는 정치인 금품수수 사건을 살펴보면 공통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하나같이 수행기사의 제보로 수사가 시작되거나 최소한 수행기사들이 사건에 연루돼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새누리당 4·11 총선 공천 당시 현기환 전 의원에게 공천헌금 3억원을 건넸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현영희 의원 사건의 경우 전직 수행비서 겸 운전기사 정동근씨의 제보로 수사가 시작됐다.
지인 진모씨로부터 불법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새누리당 홍사덕 전 의원 사건 역시 진씨의 수행기사 고모씨에 의해 폭로됐다. 새누리당 박덕흠 의원 역시 자신의 수행기사인 박모씨에게 1억원을 건넸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있다.
이처럼 수행기사들이 계속해서 뇌물사건에 연루되는 것은 그들이 정치인들의 숨기고 싶은 어두운 면과 내밀한 사생활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정치인들에게 차란 움직이는 사무실이나 마찬가지다. 신문을 읽거나 각종 보고서를 읽는 것은 물론 직원들에게 이런저런 업무 지시를 하고 지역구 유권자나 주요 지역 지도자들과 통화를 하는 곳도 대부분 차 안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수행기사들이야말로 국회의원의 일거수일투족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어디서 누구를 만나는지, 누구와 무슨 통화를 하는지를 꿰뚫고 있다고 봐야 한다.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은 탓에 어떤 발언과 행동이 정치인으로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지도 쉽게 눈치 챈다. 배우자 몰래 외도를 하거나 공식 후원금이 아닌 뒷돈을 챙기는 것도 수행기사의 레이더망에서 벗어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치인들이 수행기사를 가장 신뢰할만한 사람으로 쓰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정치인들이 시간 날 때마다 서로에게 당부하는 말에서도 수행기사의 중요성을 간파할 수 있다. "자네, 수행기사한테 잘해."
◇정치인 수행기사들의 유형
정치인들이 회의에 들어가거나 식사를 할 때 또는 저녁에 술을 마시면 수행기사들은 사실상 무작정 대기해야한다.
언제 부를지 모르기 때문에 개인적인 용무를 위해 멀리 갈 수도 없다. 이 같은 생활이 익숙해진 수행기사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비는 시간을 활용한다.
독서·운동형은 신문이나 소설책을 읽는다. 체력단련장에서 땀을 흘리거나 간단한 운동을 즐기기도 한다. 수면형은 차 안에서 잠에 빠지는 스타일이다. 국회의원이 차문을 한참 두드려야 일어나는 경우도 많다.
오락형은 내기당구를 치거나 도박판을 벌인다. 판돈이 커져 몇 달치 월급을 날린 수행기사의 슬픈 사연도 정치권에 떠돈다.
간혹 향락형도 있다. 총각 수행비서 중에는 국회의원이 저녁모임을 하는 동안 애인을 여의도의 호텔로 불러 애정행각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는 후문이다.
국회의원의 돈에 손을 대는 경우도 있다. 상당수 국회의원들은 차 트렁크에 현금을 넣고 다니는데 이를 알고 있는 수행기사가 거액을 들고 도망간 사례도 있다.
◇수행기사들, 그들이 '배신'하는 이유는?
이처럼 갖은 애환 속에 살아가다보니 정치인 수행기사들은 피곤하다. 자신을 하수인 취급하는 정치인을 만나면 스트레스 강도는 한층 높아진다.
게다가 운전이라는 행위 자체가 갖는 특유의 심리적 압박감은 때로 정치인과 수행기사 간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또 활동적인 국회의원일수록 모임과 만남이 많은 탓에 이 같은 유형의 의원을 만난 수행기사들은 곤혹스러울 때가 다반사다.
본디 행사시간은 예상보다 길어지기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다음 약속시간을 넘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조금이라도 빨리 다음 일정장소로 이동하려면 부득이 곡예운전을 해야 한다. 국회의원 차량이라는 표식을 감춘 뒤 별의별 방법을 동원해서 모임장소에 도착하는 경우도 있다.
수행기사로선 목숨을 건 도심의 레이스를 펼치고 있는데 뒷자리에 발 뻗고 앉은 의원이 '이쪽보다 저쪽이 빠르다' 등 잔소리를 하며 운전경로를 놓고 간섭을 할 경우 그때부턴 의원이 아니라 시쳇말로 '웬수'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입버릇이 고약한 의원이라도 모시게 되는 날에는 매일같이 조금씩 성격이 나빠지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한 수행기사가 의원의 타박과 욕설을 참지 못한 나머지 의원이 탄 차를 도로에 세워 두고 내려버렸다는 소문도 정치권에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수행기사들과 의원 간에 갈등이 끊이지 않으면서 의원들 사이에서는 수행기사들을 대할 때 최대한 그들의 인격을 존중해야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최근 연달아 터져 나온 새누리당 의원들의 금품수수 의혹 역시 이 같은 움직임에 기름을 부었다.
이 같은 자성의 목소리는 숨기고 싶은 자신들의 실제 모습을 수행기사들이 대중 앞에 폭로하기 전에 집안 단속부터 잘하자는 취지겠지만, 국민의 존경을 받아야할 국회의원들이 내부 입단속에 급급하다는 현실은 어딘지 모르게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