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7프로젝트’에서 건졌다, 곧 놀랄 것이다…이수인

2012-09-04     나는기자다

 초등학생 시절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던 소녀는 1999년 국립 국악학교에 입학하면서 해금을 처음 접한다. 일정한 음자리 없이 줄을 잡는 손의 위치와 줄을 당기는 정도에 따라 음높이가 정해지는 해금의 매력에 빠진 소녀는 바이올린 대신 해금을 분신으로 삼았고 상급학교인 국악고, 이화여대 한국음악과(05학번)로 차례로 올라갈 때까지 한국 최고의 해금 연주자 겸 교수의 꿈을 키워갔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한 직후인 2009년 5월 어머니의 권유로 참가하게 된 ‘미스춘향 선발대회’가 운명을 바꿔놓았다. 8월30일 개봉한 하정우(34)와 공효진(32)의 리얼 로드 다큐영화 ‘577 프로젝트’(감독 이근우)에서 2009 미스춘향 진 출신 신예로 주목받고 있는 이수인(26)이다,

“어머니는 당신 딸이 세상 누구보다 예쁘다고 느끼셨나 봐요. 또래 다른 아이들과 객관적으로 비교해 뽐내보고 싶으셨는지도 모르죠. 그래서 좋은 추억 만들어 보자고 저를 살살 꾀셨어요.”

하필이면 왜 미스춘향이었을까. 미스코리아도 있는데? “미스코리아는 솔직히 제 키가…. 호호호.”

미스코리아 참가자의 키는 평균 168㎝이나 이수인은 163㎝다. 미모나 학벌로 미스코리아와 같은 미인대회에 나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었겠으나 역시 키가 한계였다. “중학교 때부터 한복을 입는 것에 익숙해 한복을 입고 대회를 치르는 미스춘향에 알맞다는 점도 작용했죠.”

“혹시 어머니께서 혼수로 미스춘향 타이틀을 원한 것 아닌가”라는 민감할 수도 있는 질문을 던져봤다. 이수인은 전혀 주저하지 않고 “네, 그러셨던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그런 것에 부끄러워하거나 감추려고 하지 않는 솔직함에 오히려 흡족해졌다.

어머니의 그런 야심찬 계획은 딸이 미스춘향에서 1등인 ‘진’을 거머쥐면서 틀어져버리고 만다.

“사실 저는 그런 대회에 나가는 것이 싫었거든요. 남들 앞에 서는 것을 많이 부끄러워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미스춘향에 나서 보니 갑자기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었어요.그리고 꼭 한 번 정말 큰 무대에서 승부를 걸어 보고 싶어지더라구요. 그래서 어머니한테 선언했죠. 가수가 되겠다구요.”

이 같은 결심에는 대회 이후 사석에서 만난 어느 유명 가요작곡가가 그녀의 노래를 듣고 늘어놓은 격찬도 한 몫 단단히 했다.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수의 길을 선택한 그녀는 대형 가요기획사에 연습생으로 들어간다. 지난해 봄까지 2년 가까이 준비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실력과 ‘끼’ 그리고 젊음으로 무장한 10대 지망생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가요계에서 대학 4년을 다 마친 20대 중반의 이수인이 가수가 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가수의 꿈을 접기로 했죠. 그러나 한 번 솟아오르기 시작한 끼를 억누를 수는 없더군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연기였어요. 배우가 돼 연기를 하고 뮤지컬도 하면 가수의 꿈도 간접적으로 이룰 수 있을 거라는 생각, 현실적인 우회 전략이었던 거죠.”

그러던 차에 우연한 기회에 지난해 ‘577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됐다. 이 프로젝트 참여를 통한 데뷔 아닌 데뷔는 미스춘향 도전 못잖은 승부였다.

“사실 저는 몸을 움직이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요. 학교 다닐 때도 버스 한 정류소 거리를 택시를 타거나 버스를 탈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이 프로젝트의 취지를 듣는 순간 꼭 한 번 해보고 싶더라구요. 제가 평소 흠모하던 정우 오빠, 효진 언니와 같이 호흡할 수 있는 기회가 그리 흔한 것이 아니잖아요. 26년간 단조롭게 살아온 일상에도 변화를 주고 싶었죠. 물론 577㎞의 거리를 계속 걸어야 한다는 것이 운동과 담쌓은 저로서는 당연히 부담스러웠지만 이 기회에 제 한계에도 도전해보고 싶었답니다.”

그러나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매일 걷고 또 걷는 사이 햇볕은 피부를 사정 없이 태웠고, 차가운 바람은 몸을 가차 없이 얼렸다. 여자라고 해서 남자들이 짐을 들어주는 배려도 없었고, 특별히 사정을 봐주지도 않았다. 함께 걷고, 같이 쉬었을 뿐이다. 그나마 매일 밤 잠들기 전 하정우, 공효진 등 스타와 KBS 공채 20기 출신으로 안방극장에서 실력을 연마해온 탤런트 이지훈(33), 지방 연극무대에서 칼을 갈아온 영화배우 김성균(32) 등 여러 선배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나눈 대화와 교류는 힘들었던 하루를 달래주는 것을 넘어 행복감에 젖어들게 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분들이 모두 마음씨가 곱고 성격이 좋아서 아직 낯설기만 한 저를 오랜 시간 동안 만나온 사람처럼 스스럼 없이 대해주셨고 따스하게 품어주셨어요. 정말 최고의 시간들이었죠.”

문득 하정우와 공효진에 대해 이수인이 팬이 아닌 대장정의 동료로서 받은 느낌이 궁금해졌다.

먼저, 하정우. 이 프로젝트의 리더로 가장 많이 고민하고 고생했을 그다. 긴 여정에서도 많은 사람들을 ‘하정우빠’로 만들어 온 성품에는 변함이 없었을까. “저는 평소 하정우 오빠를 영화계 블루칩이라고 생각해왔어요. 그런데 실제로 만나본 오빠는 정말 인간적인 분이었어요. 농담도 잘하시고, 장난도 잘 치시고. 모든 사람들에게 친형, 친동생, 친오빠, 친구처럼 다 잘 대해주시고요. 같이 20일 넘게 지내는 내내 그랬죠. 오빠가 스타라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릴 정도였답니다. 그런데 신기하죠? 영화나 연기 얘기만 나오면 사람이 완전히 달라지는 거에요. 소름이 확 끼친다고나 할까요. ‘역시 하정우구나’ 싶더라구요.”

그럼, 공효진은 시종일관 ‘공블리’였나. 지치고 힘든 길이 감춰둔 본색을 드러내지는 않았을까. “저는 원래부터 효진 언니를 좋아했어요. 드라마 ‘고맙습니다’ ‘파스타’ ‘최고의 사랑’, 영화 ‘미쓰 홍당무’ ‘러브픽션’ 등 전작들을 모두 봤어요. 그때마다 언니만의 뭐랄까. 아우라가 느껴지고 스타일이 나오고 매력이 엄청나게 많다고 느꼈죠. 실제로 만난 언니는 처음에는 낯을 좀 가리는 듯했지만 곧 친언니처럼 대해 주셨어요. ‘아, 이 언니는 역시나 꾸밈 없는 사람이구나. 정말 좋은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되더라구요.”

 

이수인은 “그 먼 거리를 가는 동안 정우 오빠와 효진 언니 모두 우리와 똑같이 먹고, 똑같이 자고, 똑같이 걷고, 똑같이 쉬었어요. 스타? 주연배우? 그런 것 전혀 없었어요”라면서 “여행을 함께 하면 사람에 관해 속속들이 알게 된다잖아요. 그래서 두 분을 더욱 사랑하게 되고, 존경하게 됐답니다”라고 전했다.

지난해 11월15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을 떠나 20일째(휴식일 하루 제외)되던 12월4일 해남 땅끝 마을에 도착했다. 걷는 것 싫어하는 이수인도 낙오되지 않고 다른 멤버들과 함께 당당히 푸른 바다 앞에 섰다.

“바닷가에 도착했을 때 ‘이제 더 이상 안 걸어도 된다’는 안도감이 가장 먼저 들더군요. 그리고 나서 ‘26년 동안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을 마침내 해냈구나’ 하는 뿌듯함도 느껴졌죠. 그러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부대껴온 저 좋은 사람들과 이제 더 이상 함께 새벽을 열고, 밤을 닫을 수 없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자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해져 오는 것이었어요. 다들 서로를 슬쩍슬쩍 보기도 하고, 손을 잡아보기도 하고, 어깨를 두드리기도 했죠.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고, 느끼고 있었던 거에요.”

‘577프로젝트’를 무사히 마쳤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이수인은 서울로 돌아온 뒤에도 계속 연기를 배우러 다니고, 좋은 배역을 따내기 위해 끊임없이 오디션에 참가하고, 뒷받침해줄 소속사를 찾느라 애썼다.

영화가 개봉했지만 얼굴을 알리는데 성공했다고도 할 수 없다. 리얼리티 다큐멘터리로 연기력을 평가받을 수도 없다. 탤런트 최란(1979 진), 박지영(1988 선) 오정해(1992 진) 윤손하(1994 진) 이다해(2001 진), 장신영(2001 현) 등 역대 미스춘향 출신들이 연예계에서 성공했다고 해서 이수인도 꼭 그럴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진은 1등, 선은 2등, 현은 6등이다.

그럼에도 이수인에게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일단 20일 동안 땀과 흙먼지, 햇볕과 찬바람, 민낯과 피부 트러블 속에서도 영롱한 빛을 발한 청순단아한 외모다.

그 다음은 인터뷰를 하는 사이 언뜻언뜻 드러난 마음가짐이다. 평소 운동과 담쌓고 지내던 이수인이 “저를 믿고 캐스팅해준 분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함께 걷는 동료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걸었어요”라고 말할 때 이미 가능성은 엿보였다. 영화든, 드라마든 작품은 그런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나이 먹고 시작했기 때문에 오히려 저는 조급하지 않아요. 천천히 걷기 시작했으니 그 만큼 오래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경험해봤거든요”라고 말할 때 스물 여섯 살 그녀에게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체득한 배우만이 할 수 있는 진솔한 연기를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절로 들었다면, 지나치게 앞서나가는 것일는지….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