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탓만 할텐가"…복구지역 찾은 문재인
무더운 날씨였다. 언제 태풍이 휩쓸었냐는 듯 하늘도 공기도 말갛게 갰다.
뜨거운 햇볕은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얼굴과 목을 빨갛게 달궜다. 비닐하우스 옆에서 목줄을 매단 채 쉬고 있는 진돗개도 더위에 지친 듯 혀를 길게 내밀었다.
'나주 배'로 유명한 전남 나주시 남평읍 평산3리. 이 지역은 지난 29일 태풍 '볼라벤'이 불어 닥쳐 큰 피해를 입었다.
주변에는 고추, 호박, 피망, 배추 등을 키우는 비닐하우스 수십 채가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대부분 비닐이 벗겨지고 철골이 휘어져 태풍이 불어 닥친 '그날 밤'의 참상을 짐작케 했다. 길 옆에는 벌통이 아무렇게나 방치돼 행인들을 위협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예비후보 '담쟁이 캠프'의 자원봉사자 200여명은 31일 오전부터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벌였다. 문 후보도 이날 부산에서 토론회를 마친 뒤 부랴부랴 나주를 찾았다.
오후 3시께 문 후보의 회색 쏘렌토SUV 차량이 마을 어귀에 도착했다. 문 후보는 나주가 지역구인 장병완 의원, 후보의 수행을 맡고 있는 김한정 특보와 함께 차에서 내렸다.
카키색 등산바지에 등산화, 아이보리색 셔츠를 입은 문 후보는 밀짚모자를 눌러썼다. 수건도 목에 걸고 소매도 걷어붙였다.
문 후보의 도착 소식을 전해들은 취재진과 주민들, 지지자들이 문 후보를 에워쌌다. 문 후보는 주민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 비닐하우스에서 장화를 갈아 신었다.
본격적인 봉사활동에 나선 문 후보는 비닐하우스의 비닐을 제거하는 일을 맡았다. 한 손에는 작은 낫이 쥐어졌다. 문 후보가 비닐을 뜯어내자 뜯겨진 비닐 사이로 빗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고추가 심어진 비닐하우스에 들어서자 더위가 훅 끼쳤다. 여기저기서 "사우나네~"라며 탄식이 흘러나왔다. 지붕이 반쯤 드러난 비닐하우스 안에는 햇볕을 피하지 못한 고춧잎들이 바짝 타들어가고 있었다.
문 후보의 얼굴과 등줄기에도 쉴 새 없이 땀이 흘러내렸다. 목장갑을 낀 손으로 땀을 훔치던 문 후보는 소용이 없다고 느낀 듯, 이내 안경을 벗어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문 후보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피해농가 주인을 향해 "한숨만 나오시죠?"라고 말을 걸었다. 주인은 체념한 듯 "다 하늘의 뜻이죠"라고 답했다. 그러자 문 후보는 "옛날에는 하늘 탓을 하면 됐지만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재해 책임을 농민에게만 돌리는 정부의 무능을 질타하는 듯 보였다.
봉사활동을 마친 문 후보는 길가에서 동네 주민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대부분 "나주시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해 보상을 받도록 해 달라"는 요구였다.
문 후보는 민원 해결을 위해 파견된 행정관처럼 주민들에게 이런 저런 사항들을 물었다. 주민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그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그는 "참여정부 때도 폭설이 내렸을 때 특별재난지역에 준하는 지원을 했다. 정부는 너무 법적 요건만 따지지 말고 적극적으로 보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후보는 이날 나주에서 발생한 초등생 성폭행 사건에 대해서도 한 마디 했다. 그는 "나도 딸이 있다. 딸 가진 부모 입장에서 볼 때 치가 떨리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분노가 느껴졌다. 당초 문 후보는 농가를 방문하기 전 나주경찰서를 방문해 신속한 검거를 당부할 계획이었으나 범인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이곳으로 왔다.
오후 4시께, 문 후보는 "낙과 피해 상황도 봐야겠다"며 인근에 위치한 금천면 오광리 과수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가는 길에 자원봉사자들에게 "수고하라"는 격려의 말도 잊지 않았다. 이들도 문 후보를 향해 "화이팅"을 외쳤다. 【나주=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