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방화' 참사 막은 역무원 "시민 도움 컸다"
2014-05-29 퍼블릭 웰
대구 지하철 참사와 빼닮은 방화사건이 28일 서울 지하철 3호선에서 발생했으나 서울메트로 직원과 한 여성 승객이 필사적으로 나서 자칫 재연될 뻔한 대형 참사를 막았다.
■ 대형 참사 막은 권순중 대리
28일 지하철 3호선 방화사건이 대형 참사로 이어지는 것을 막은 서울메트로 매봉역 역무원 권순중 대리(46)는 "불을 끄면 사는 것이고 못 끄면 죽는다는 생각만 했다"고 말했다.
권 대리는 이날 오전 10시51분 도곡서비스센터에 볼일이 있어 지하철을 탔다. 1분 뒤 서울 강남구 도곡동 지하철 3호선 매봉역을 출발해 도곡역에 막 진입하려던 오금 방면 전동차 339편 3399객차 4번째 객실 노약자석에 앉아 있던 조모씨(71)가 지하철 바닥에 시너를 쏟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노약자석 바로 옆 출입문에 서서 차창 밖을 내다보며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던 권 대리는 "불이야" 하는 소리와 타는 냄새에 놀라 황급히 몸을 돌렸다.
권 대리는 승객들에게 비상벨을 눌러 신고해달라고 하고 객실 내 비치된 소화기를 들고 직접 진화에 나섰다.
권 대리는 조씨가 팔을 붙잡아 당기며 방해하는 것을 뿌리치며 불길을 진압했다. 처음 붙인 불이 꺼지자 조씨는 가방에 든 인화물질을 모두 쏟아내고 다시 불을 붙였으나 권 대리가 계속 소화기를 들고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았다.
이때 열차에 있던 승객 50여명은 대부분 옆 객실로 대피했다.
마스크를 쓴 여성 승객 1명이 피신하지 않고 권 대리에게 소화기를 날라다주며 화재진압을 도왔다. 승객 370여명은 모두 피신시켰다. 도곡역 역무원들도 화재진압을 도왔다.
목격자 김모씨(73)는 "119구급대원이 도착했을 때 객실 내에는 불길이 거의 꺼져 있었으며 소화 분말로 자욱해 앞이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고 전했다.
권 대리는 불이 꺼지고 난 뒤 기자들과 만나 "정말 경황이 없어서 범인과 몸싸움한 것도 기억이 안 난다"면서 "객차 내 물건들이 불에 타지 않는 소재여서 초기 진압만 잘하면 잡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이어 "불을 못 잡았으면 대참사가 났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오금이 저린다"고 덧붙였다. 그는 "혼자였으면 절대로 불을 끄지 못했을 텐데 시민들이 많이 도와줘서 불을 끌 수 있었다"면서 "내가 영웅이 아니라 누구든지 다 할 수 있는 일이었고, 직원이라서 좀 더 사명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세월호 사고 이후에 서로 조금씩만 도우면 참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우리 사회에 서로 돕는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 재판 불만에 방화 계획
조씨는 이날 오전 10시 경기 고양시 원당역에서 시너 11병과 부탄가스 4통을 나눠 담은 짐가방 2개를 들고 탑승했다.
시너가 든 병 5개의 뚜껑을 미리 열어놓은 뒤 매봉역을 지나자 발로 슬며시 가방을 넘어뜨려 다른 승객들이 모르게 시너를 흘러나오게 하고 불을 붙였다.
하지만 권 대리가 화재를 재빨리 진압하자 조씨는 도곡역에서 내려 "지하철 사고로 화상을 입었다. 병원으로 데려가달라며"며 역 앞에 대기하던 119 구급차에 올라탔다.
구급대는 조씨를 인근 화상 전문병원으로 이송했으나 "기자를 불러달라"는 그의 말을 이상하게 여겨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오전 11시44분쯤 병원에서 그를 긴급 체포했다.
유흥업소를 운영하는 조씨는 2000년 화장실 정화조가 역류해 영업에 큰 손실을 입었다며 건물주를 상대로 2004년부터 소송 등 분쟁을 벌이다 지난달 25일 광주고법으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판결을 받았다.
조씨는 경찰조사에서 "4억~5억원대의 보상을 받아야 하는데 고작 몇 천만원만 받도록 결론이 난 것이 억울해 자살하려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는 대구 지하철 참사와 유사하지만 역무원과 승객의 적절한 대응으로 참사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2003년 2월18일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에 정차한 전동차 안에서 한 지적장애인이 휘발유가 든 페트병에 불을 붙이고 객차 바닥에 던지면서 발생했다.
당시 불길은 반대편 선로에 진입해 정차한 열차에 순식간에 옮겨붙으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져 192명이 사망하고 148명이 다치는 대형 참사로 번졌다.
출처 : 경향신문 /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