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삶]집 속에 또 집…집 부자 '이진백씨'
2012-08-20 나기자
하루 만에 여러 채의 집과 탑이 쌓이고, 또 하루아침에 허물어진다. 그러다 새로운 형태의 집과 탑이 생겨난다. 마술램프의 거인이 환생한 듯 하루아침이 많은 집이 지어진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집을 소유하고 있는 이진백(60)씨를 울산 중구 성안동 황암가든에서 만났다.
황토로 지은 황암가든은 이진백씨의 기술과 땀방울로 빚은 작품이다. 황토집 지붕아래에는 수십 채의 집과 탑이 공존하고 있다. 모두 대나무와 소나무로 만든 미니어처 작품이다.
미니어처 작품만으로도 놀라운데 집과 탑을 손쉽게 해체하고 재건할 수 있는 기술이 진명목이다. 이러한 기술은 오직 그만이 가진 것이다.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았어요. 한옥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머릿속에 원리를 생각해 내지요. 그 시간 짧을 때도 있고 길 때도 있지요. 이렇듯 스스로 원리를 깨닫고 난 후 작품으로 만들지요."
이씨는 작품의 아이디어는 책자나 TV 매체를 통해 얻는다. 무심코 뉴스를 보다가 중국의 성이나 탑이 비치면, 머릿속에 각인시켰다가 형태를 그려 놓는다. 시간이 날 때 집을 짓고 탑을 쌓기 위한 밑그림 작업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건축 기술자로 활동해 왔기에 이러한 일이 가능했다. 현재 낮에는 공사현장에서 일하고 저녁이 돼야 미니어처 만들기에 나선다.
"가족들은 힘들다고 쉬라고 얘기를 하지요. 하지만 미니어처를 만들 때는 절로 힘이 나요. 힘들기는 하지만, 정신적으로 행복감을 느끼니깐 피곤하지는 않아요."
밑그림을 바탕으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대나무 손질이다. 정교하게 대나무를 다듬어 창살 하나하나까지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한다. 창살을 만들기 위해 수천수만 개의 대나무 살을 다듬는다. 또 기와를 표현하기 위해 나무에 홈을 하나씩 만든다. 보기에도 쉽지 않은 일이며, 하나씩 만들어 나가는 일은 더더군다나 힘든 일이다. 집중력을 동반한 장인정신이 아니면 절대 이룰 수 없는 일.
그의 작품은 모두 한옥이거나 분황사와 같은 문화재가 모델이다. 건축 기술자이기에 그림만 보아도 집이나 탑을 만드는 원리를 꿰뚫을 수 있다.
황암가든에는 그가 만든 작품이 전시돼 있어 민속박물관을 방문한 듯하다. 테이블도 황토로 만들었다. 단순한 황토 테이블이 아니라 테이블마다 글자를 그려 놓았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등 고사성어를 위주로 그려 놓아 교육적인 효과도 가져다준다.
얼레도 수십 개 진열해 놓았고, 옛날 농기구도 미니어처로 만들어 놓아 향수를 불러일으키게도 한다.
그가 지은 황암가든은 오리요리 식당으로 몸에 좋은 약초를 듬뿍 넣어 정성으로 만든다. 넉넉한 인심이 더해져 여느 식당에서처럼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작품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눈감아 준다.
이씨는 대형 탑을 마무리하고 있다. 탑 층층이 창살 문을 만들어 다는 일만 남았다. 가을이 되면 깜짝 놀랄 작품이 탄생하게 된다.
그의 바람은 작품을 누구나 감상할 수 있는 박물관을 건립하는 것이다. 하지만 워낙 큰 비용이 들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식당 안에 작품을 전시할 수밖에 없다.
박물관 건립의 꿈이 희박하더라도 그는 늘 행복한 미소를 머금는다. 작품을 만드는 일은 삶의 보람이며 희망이기 때문이다. 이씨는 힘이 다할 때까지 집 짓는 일을 계속할 계획이다. 앞으로도 최고 집 부자의 자리를 내 주지 않을 듯하다.【울산=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