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응급실 운영포기·의사들 집단사표 속출…'응당법' 실효성 논란

2012-08-19     나기자

'응급실 전문의 당직제'가 시행된지 보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 제도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달 5일부터 응급실에 내원하는 환자를 응급실 근무의사가 1차적으로 진료한 후, 타과의 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당직전문의에게 진료를 요청하는 내용의 응급의료법 개정안을 시행했다.

진료요청을 받고도 응급실의 비상호출(on-call)에 불응하는 당직전문의에게는 면허정지, 해당 응급기관에는 200만원의 과태료 처분이 내려진다.

복지부는 이를 통해 야간, 공휴일에도 비상진료체계를 유지하고, 응급실을 내원하는 환자들이 필요한 경우 전문의로부터 보다 빠르고 적절한 응급진료를 받아 만족도가 향상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이 제도가 이상적이긴 하나 현실과는 거리가 먼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이 개정안 시행 이후 19일 현재까지 지역응급의료기관 지정취소를 신청한 의료기관도 벌써 10곳을 넘어섰고, 경남 등 일부 지역의 의사들은 제도 시행에 대한 반발 표시로 집단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러한 비판적인 의견은 전문의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지방 중소병원들 사이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현재 응급의료진 인력배치기준에 따르면 지역응급의료센터의 경우 전담전문의 2명 이상을 포함한 전담의사 4명 이상과 간호사 10명 이상을 둬야 하며, 지역응급의료기관은 응급실 전담의사 2명과 간호사 5명 이상을 배치해야 한다.

그러나 개정안은 이에 더해 당직전문의를 둬야 하는 진료과목을 응급의료기관에서 개설하고 있는 모든 진료과목으로 확대했다. 즉 응급 환자가 발생하면 달려가는 '온콜'을 인정하긴 하나, 모든 과에서 매일 1명씩 당직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과별로 전문의를 1~2명밖에 확보하지 못해 가뜩이나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는 중소병원들에게는 막대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김현숙 새누리당 의원에 따르면 전국 457곳 응급의료기관 중 전문의 5명 이상을 확보하고 있는 기관은 176곳(38.5%)에 불과했다.

또 지난 13일 복지부가 발표한 '2011년 응급의료기관 평가 결과'에서도 시설·장비·인력 등 필수영역의 법적기준을 모두 충족한 기관은 전체 452개 기관 중 58.4%(264개소)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일수록 상황은 더욱 열악했고, 인력이 충족률 59.1%에 그쳐 핵심 인프라 중 가장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의 한 병원 관계자는 "물론 전문적인 진료로 응급환자의 만족도를 높이고 의료사고를 줄인다는 제도의 취지는 바람직하다"며 "하지만 규모가 작은 병원에선 전문의 1~2명이 외래 환자를 보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데 응급실 당직까지 서라고 하는 것은 의료계의 현실을 무시하는 정책"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와 같이 불만이 쏟아지자 복지부는 부랴부랴 3개월간의 계도기간을 두고 달래기에 나섰지만 비난 강도는 더욱 높아만 지고 있다.

11월4일까지로 정해진 계도기간 동안은 대국민 홍보 및 응급의료기관 비상진료체계 정비 등을 실시하되, 행정처분은 유예된다. 하지만 이 덕분에 대부분의 응급의료기관에서는 시행 2주가 지난 지금까지 과거와 큰 차이 없이 응급실을 운영하는 등 오히려 법 시행에 혼선을 빚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한의사협회는 "당초 입법예고안에는 3년차 이상 전공의(레지던트)도 당직 범위에 포함시켰으나 의협을 비롯한 전공의들이 반대하자 레지던트를 제외했고 이후 당직 전문의를 병원에 상주토록 하던 조항을 병협이 반대하자 온콜 대기를 수용하는 것으로 변경했다"며 "이제는 시행을 이틀 남겨두고 계도기간을 둬 행정처분을 3개월간 유예하는 등 탁상행정의 전형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어 "이 같은 복지부의 탁상행정으로 인해 현재로는 온콜 당직전문의 뿐만 아니라 전체 세부 전문의도 모두 온콜로 대기해야만 하는 상황이 초래됐다"며 "또 지방의 응급의료기관들은 당장 당직전문의를 구해야 하나 인력수급 문제 등으로 인해 이마저도 불가능해 응급실 폐쇄도 계획하고 있는 상황으로 악화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양동 경남의사회장은 16일 KBS뉴스라인에 출연해 "제도 시행 후 10곳 이상의 지역응급기관이 문을 닫았고, 앞으로 제도적으로 보완하지 않을 경우 지방 응급의료체계가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며 "지역민의 안정과 건강을 위해 심각하게 걱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현재 경남 지역 39곳 응급의료기관의 해당과목별 전문의수는 평균 0.8명에 불과하고 응급 전문의가 없는 전국 시·도 지역이 99곳이 넘는다"며 "정부가 응급실 진료수가를 얼마나 인상할지는 모르지만 단순히 수가조정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에도 복지부측은 시행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정은경 복지부 응급의료과장은 "현재 의료기관들이 평가결과를 받아보고 이 제도를 적용해 응급실을 계속 운영해 나갈지 아니면 정리할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응급의료기관이 과다한 지역과 취약한 지역의 숫자가 적정한 수준으로 조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과장은 이어 "정부는 군단위 지역 중 지역응급의료기관이 없는 취약지역에는 221억원을, 평가결과 상위 80%에게 219억원 등 다양한 지원방안을 마련했다"며 "또 사정이 정말 열악한 곳도 있겠지만 사실 충분한 여력이 있는 의료기관들도 분명히 있다. 이제 시행된지 2주밖에 지나지 않았고 지역 상황에 맞는 해결책을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복지부는 각계 전문가들과 응급의료제도개선협의회를 구성해 하반기까지 5개년 기본계획을 완성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통해 이번 전문의 당직 문제를 포함, 보다 효율적인 응급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