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보조금담당 공무원 "쓰고 남은 보조금, 내 통장으로"

2014-02-11     퍼블릭 웰
   안행부, 근절 방안 추진하기로 지난해 안전행정부 6급 공무원 김모(39)씨는 민간단체 보조금 지급 업무를 담당했다.
 
다 쓰지 못한 돈을 돌려받는 일도 김씨 몫이었다.
 
그가 작년 한 해에만 주무른 보조금은 145억원. 민간단체 입장에서 김씨는 신(神)적인 존재였다.
 
보조금을 주는 것도, 돌려받는 것도 김씨 혼자 담당하기 때문이다.
 
민간단체들은 김씨를 화나게 하면 다음 해 보조금을 받지 못하거나 줄어들까 봐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지원해준 단체에 정식 보조금 반납고지서를 송부하지 않고, 전화로 "다 쓰지 못한 보조금은 ○○은행 ×××××-×××-××××××으로 부치라"고 통보했다.
 
이 계좌는 김씨 개인 소유였다.
 
그는 이 같은 수법으로 13곳 민간업체로부터 1억6000만원에 이르는 정부 보조금을 받아챙겨 개인 빚을 갚는 데 썼지만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보조금을 집행하는 공무원뿐 아니라 보조금을 받는 민간단체들도 나랏돈을 가로챘다.
 
서울지방경찰청은 "김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8곳의 민간단체가 각종 편법으로 국가보조금을 가로챈 사실을 별도로 확인했다"고 10일 밝혔다.
 
적발된 단체들은 중복신청뿐 아니라 거래대금 돌려받기, 통장사본·송금증 위조 등 각종 수법으로 보조금을 빼돌렸다.
 
가령 한국고유문화콘텐츠진흥회는 '나라꽃 무궁화 축제' 행사를 산림청으로부터 5000만원에 위탁받았는데, 이 행사에 대한 보조금을 안행부와 서울시에 별도로 신청해 각각 3900만원과 2000만원을 더 타냈다.
 
부처별로 정보 공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노린, 이른바 '눈먼 돈' 가로채기였다.
 
마치 돈을 쓴 것처럼 업체와 짜고 가짜 영수증 등을 꾸미거나 사업을 한 것처럼 서류를 조작해 보조금을 타내는 수법 등은 '고전적'인 축에 속한다고 경찰은 전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된 보조금을 공무원이나 민간단체가 문란하게 사용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비리종합선물세트'라고 불렸던 어린이집이 대표적이다.
 
2012년 한 해에 적발된 서울·경기 일대 비리 어린이집만 238곳. 이들이 빼돌린 국고(國庫)는 확인된 것만 84억원에 이른다.
 
국고에서 급식비를 챙긴 후 유통기한이 지난 싸구려 식재료로 만든 불량 음식을 먹이고, 그 차액(差額)을 챙긴 서울 강동구의 어린이집은 "이런 닭은 폐기해야 한다"고 항의한 조리사를 해고하기도 했다.
 
최근에도  요양서비스를 제공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국가보조금을 타낸 요양보호사 ,탈북자를 채용한 것처럼 속여 통일부로부터 1억원을 부정으로 수급한 영농조합 법인 대표, 동네 수퍼에 돌아가야 할 정부 보조금을 빼돌린 전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 회장 등이 잇따라 경찰에 적발됐다.
 
안행부는 10일 보조금 운영 전 과정을 전산시스템에 의해 관리하고, 현금 취급은 전면 금지한다는 내용의 '회계비리 근절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범죄 혐의가 의심되는 단체에 대해서는 현장 실사를 통한 회계검사를 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나랏돈을 '쌈짓돈'으로 생각하는 인식을 고쳐놓지 못하는 한 같은 유형의 범죄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보조금 횡령으로 서울청에 적발된 피의자들은 "민간단체 운영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이런 것까지 잡아내느냐"며 별다른 죄의식이 없었다고 한다.
 
경찰청의 한 간부는 "'보조금은 눈먼 돈'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게 큰 문제"라며 "경찰이 안행부를 수사한다는 소문이 돌자 안행부에 대한 보조금 신청 건수는 절반으로 줄고, 시청에 대한 보조금 신청 건은 두 배로 뛰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출처 : 조선일보 / 김형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