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법화사-중국 법화원 ‘해상왕’장보고 명맥 잇는다
제주 법화사-중국 법화원 ‘해상왕’장보고 명맥 잇는다
  • 박혜정 기자
  • 승인 2023.03.28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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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한중 불교 전통문화 계승 및 역사 고증 위한 교류 의향서 체결
해상무역 통해 한중일과 동아시아 연결했던 장보고 역사 고증
제주도는 지난 2008년 제주 법화사에 장보고 동상과 기념비가 조성됐으나 장보고와 법화사에 대한 역사적 고증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도 문화재위원회 심의 결과 부결돼 철거된 점을 고려해 산둥성 법화원과 고증 작업을 함께하기 위한 역사문화 교류를 논의해왔다.
▲ 제주도는 지난 2008년 제주 법화사에 장보고 동상과 기념비가 조성됐으나 장보고와 법화사에 대한 역사적 고증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도 문화재위원회 심의 결과 부결돼 철거된 점을 고려해 산둥성 법화원과 고증 작업을 함께하기 위한 역사문화 교류를 논의해왔다. ⓒ채널제주

제주와 중국의 천년고찰이 불교문화 교류를 바탕으로 1,200여 년 전 ‘해상왕’ 장보고의 발자취를 다시 잇는다. 해상무역을 통해 한중일과 동아시아를 연결했던 장보고처럼 역사의 고증으로 한중간 문화 발전을 견인할 방침이다.

한중 해상교류와 불교문화 교류의 상징인 제주특별자치도 법화사(法華寺)와 중국 룽청시 법화원(法華院)은 27일 오후 2시(현지시간) 교류 의향서를 체결하고 불교 전통문화 교류 및 가치 확산을 위한 협력을 도모하기로 했다.

이번 교류는 한·중 수교 30주년이던 지난해 7월 22일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왕루신(王鲁新) 주제주중국총영사를 만나 한·중 관계 진전과 제주지역 경제 활성화 및 관광산업 발전을 위해 물적·인적·문화·역사 교류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기로 약속한 데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오영훈 지사는 “코로나19 상황이 좋아지면 중국을 방문해 교류의 길을 활짝 열고 싶다”면서 “삼다수와 제주산 농축수산물 교역뿐만 아니라 문화나 인적, 종교 교류에 대해서도 활발한 논의가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제주도는 지난 2008년 제주 법화사에 장보고 동상과 기념비가 조성됐으나 장보고와 법화사에 대한 역사적 고증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도 문화재위원회 심의 결과 부결돼 철거된 점을 고려해 산둥성 법화원과 고증 작업을 함께하기 위한 역사문화 교류를 논의해왔다.

제주도는 지난 2008년 제주 법화사에 장보고 동상과 기념비가 조성됐으나 장보고와 법화사에 대한 역사적 고증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도 문화재위원회 심의 결과 부결돼 철거된 점을 고려해 산둥성 법화원과 고증 작업을 함께하기 위한 역사문화 교류를 논의해왔다.
▲ 제주도는 지난 2008년 제주 법화사에 장보고 동상과 기념비가 조성됐으나 장보고와 법화사에 대한 역사적 고증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도 문화재위원회 심의 결과 부결돼 철거된 점을 고려해 산둥성 법화원과 고증 작업을 함께하기 위한 역사문화 교류를 논의해왔다. ⓒ채널제주

교류 의향서 체결식에는 오영훈 도지사를 비롯해 중국 법화원 스옌쉐스님, 법화사 도성스님, 관음사 정안스님 등이 함께 참석했으며, 이후 장보고 전기관을 둘러봤다.

중국 법화원 스옌쉐스님은 “법화원과 법화사 간의 교류는 장보고의 역사적 인연이 현재에도 연속되는 것을 의미한다”며 “양 지역의 우정을 키우며 이해의 폭을 넓히고 불교 문화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따.

제주 법화사 도성스님은 “관음신앙을 기본으로 중국지역과 불교전통문화 교류의 시발점인 교류 의향서 체결하게 돼 매우 기쁘다”며 “통일신라에서 고려시대에 이어지는 법화사 창건 역사를 고증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을 계기로 양 사찰이 지속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오영훈 지사는 “역사의 복원은 미래로 나아가는 발걸음이다. 제주와 산둥성이 법화사를 매개로 교류협력을 확대 강화하는 것은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지면서 서로 이해하고 공통점을 찾아 나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향했던 선조들의 뜻을 계승하고 세계 평화와 번영을 심도있게 논의하는 기반이 될 것”이라며 “의향서 체결을 시작으로 양 사찰 간 법화사상과 관음사상에 기초해 불교문화, 전통, 역사적 고증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를 확대할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오 지사는 “법화원·법화사의 인연이 산둥성과 제주특별자치도의 더 큰 미래를 만들어 갑니다”라고 방문소감을 남겼다.

제주도는 지난 2008년 제주 법화사에 장보고 동상과 기념비가 조성됐으나 장보고와 법화사에 대한 역사적 고증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도 문화재위원회 심의 결과 부결돼 철거된 점을 고려해 산둥성 법화원과 고증 작업을 함께하기 위한 역사문화 교류를 논의해왔다.
▲ 제주도는 지난 2008년 제주 법화사에 장보고 동상과 기념비가 조성됐으나 장보고와 법화사에 대한 역사적 고증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도 문화재위원회 심의 결과 부결돼 철거된 점을 고려해 산둥성 법화원과 고증 작업을 함께하기 위한 역사문화 교류를 논의해왔다. ⓒ채널제주

한편, 장보고는 완도 청해진의 법화사와 더불어 산둥반도에는 법화원, 제주에 법화사를 창건하고 바다로 나가는 사람의 안녕을 기원하고 세계로 향하는 해상무역의 근거지를 만들고자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주도 서귀포시 하원동 법화사와 중국 룽청시 법화원은 후기 신라시대, 중국과 일본을 무대로 활동했던 장보고가 건립한 사찰로 전해진다. 창건 연대는 아직 밝혀져 있지 않으나, 중국에 법화사를 세우고서 제주에도 세웠을 것으로 추정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어 장보고의 발자취를 따라 문화역사 교류를 추진하는 의미가 담겼다.

룽청시 법화원은 최초의 승려가 천태종파로 법화경을 읽었다고 하고, 예로부터 ‘적산 법화원’이라고도 불린다. 신라와 교역이 활발했던 당에는 신라인들을 위한 집단 거주지인 신라방과 신라인을 위한 사찰 신라원이 있었는데, 법화원은 신라방에 세운 사찰이다. 당나라에 거주하는 신라인의 신앙거점인 동시에 신라와의 연락기관 역할도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에는 1990년 장보고의 업적을 기려 장보고 기념비와 동상이 세워져 장보고 유적지로 유명하다.

앞으로 법화사와 법화원은 올해 제주도-산둥성 교류 15주년 기념사업 추진과 더불어 문화교류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세미나 등을 개최할 계획이며, 역사적 고증 작업에 나설 방침이다.

【천년고찰 적산법화원】

적산(赤山)법화원은 1,200여 년 전 서기 824년(당나라 때) 신라의 ‘바다왕’ 장보고(張寶高)가 건립하였다. 적산법화원은 중국 교동반도에서 가장 큰 불교 사원 중의 하나이며, 웨이하이(威海)시의 유일한 불교 사찰이기도하다. 최초의 승려가 천태종파로 <법화경>을 읽었으므로, 예로부터 <적산법화원>이라고 불리웠다. 적산법화원은 당나라 때 명성이 매우 높았으며 전성기에는 30명 이상의 승려가 거주하여 향초가 꺼지지 않았고 경서를 공부하러 오는 사람이 200여 명이 달하는 때도 있었다.

서기 824년 신라인 장보고(張寶高)가 적산법화원을 창건하였고, 839년에는 일본 승려 엔닌(圓仁)대사가 법을 구하러 당나라에 와 2년 9개월 동안 적산법화원에서 지냈다. 이로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적산법화원는 한중일 삼국의 우정을 이어주는 중요한 상징이 되었다.

법화원은 이진식(二進式)건축물로 마당에는 은행나무, 무화과나무, 벚나무가 심어져있다. 옥대교(玉帶橋)를 지나면 대웅전을 볼 수 있고, 우측에는 관음전, 좌측에는 지장전이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을 따라 올라가면 바로 삼불전이 보이고, 삼불전 뒤편의 좁은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해발 369m의 적산주봉에 이른다. 정상에 오르면 적산의 아름다운 경치와 석도만(石島灣)의 매력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장보고전기관】

장보고전기관(이하 기념관)은 적산연화정(赤山蓮花頂) 남쪽에 위치하여 장보고기념탑과 함께 장보고를 기념하는 중요한 명소이다. 2007년 4월, 장보고 기념관이 개관되었다. 기념관은 5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신비로움으로 가득 찬 장보고의 일생을 다루고 있다. 장보고는 ‘해상왕’으로 불리우며 한중 양국을 연결하는 해상실크로드를 개척해준 인물이다. 그는 법화원을 한중 양국 무역의 거점으로 활용하여 해상무역을 펼쳤으며 이로인해 ‘해상무역왕’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장보고 기념관은 중국 산동성을 방문하는 한국 청소년에게는 중요한 수학여행지로 여행객에게는 중요한 관광지이다. 또한 위해(威海)시 한중민간문화교류 행사 시에는 중요한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장보고(790-841 A.D.)는 신라(현 완도현)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바다를 접하여 물에 익숙하다. 그는 성격이 거칠고 대범하였다. 소년시절부터 무예를 배웠고, 화살과 창을 잘 다루었으며, 의협심이 강해 지역에서는 유명한 소년영웅이었다.

8세기 말 신라의 귀족 간 전쟁이 잦아지며 조정이 해이해지고 각종 부역과 세금은 폭증하였다. 자연재해까지 빈번해지며 나라의 경제는 쇠락에 빠지고 서민들의 원성은 끊이지 않았다. 많은 신라인들은 당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당시 당나라도 안사의난(安史之亂)을 겪으며 중앙세력이 약화되고 지방세력들이 각자 세력을 키워가는 혼잡한 시기로 나라에서는 많은 병력이 필요한 시기였다. 장보고와 그의 일행들은 함께 당으로 건너가 무녕군(武寧軍)에 가입해 병사가 되었다. 그 중 장보고와 정년(鄭年)은 뛰어난 무예와 용맹함으로 수차례 전공을 세웠으며 819년에는 소장으로 승급하였다.

이후 두 사람은 서로 뜻이 달라, 정년은 무년군을 떠나 초주군에 가입했고, 장보고는 적산을 중심으로 해상무역을 펼쳐 거대한 부를 축적한 후, 적산에 신라인들을 결집시킬 수 있는 법화원을 세웠다. 서기 828년 장보고는 신라로 돌아와 성덕왕(興德王)에게 1만 명의 병력을 요구하여 고향에 청해진(靑海鎭)을 세우고 직접 대사역을 맡아 인근지역의 해적을 소탕하였다. 당시 해적들이 신라인을 노예로 납치해가는 일이 빈번하였으나 장보고의 도움으로 해적들이 물러나고 장보고는 또다시 영웅으로 추앙받게 되었다. 그 후 장보고는 본격적으로 해상통로를 개척하여 해상국제무역의 길을 열었으며 해상무역에 수반되는 조선업, 제조업까지 시작하게 되어 신라에서 유력한 지방세력으로 성장하였다.

836년 신라 흥덕왕이 세상을 떠났다. 김명(金明)이 병변을 일으켜 상대등인 김균정(金均禎)을 살해하고 새로운 왕을 세웠다. 838년 김녕(金明)이 반란을 일으켜 희강왕(僖康王)을 자결시키고 스스로 민애왕(閔哀王)이라 자칭하였다. 김균정(金均禎) 아들 김우징(金祐徵)은 청해진으로 도망을 가 장보고에게 보호해줄 것을 요구하며 ‘훗날 왕이 되면 필히 당신의 딸을 비로 맞이할 것이오’라고 약속을 하였다. 장보고는 출병하여 김명의 군대를 몰아내고 김우징을 왕위에 올렸으며 신무왕(神武王)이라 칭하였다.

신무왕은 즉위한 지 6개월 만에 병으로 죽자 그의 아들 문성왕은 장보고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려 했다. 그러나 조정의 귀족들은 장보고 일가의 비천한 신분을 이유로 크게 반대했다. 장보고의 보복을 두려워한 문성왕과 귀족들은 장보고가 스스로 성을 만들어 거처하고 있다며 죄명을 씌워 살해하였다. 장보고를 죽인 사람은 해적 염장(閻長)이다. 그는 해적의 두목이었으나 인재를 아끼는 장보고는 청해진에서 해적 소탕 시 염장이 기민하고 총명하다고 여겨 그에게 기회를 주며 살려두었다. 장보고는 염장이 다시는 해적질을 하지 않도록 머리에 도적 ‘盜’를 새겨 두었다. 염장은 이에 앙심을 품고 장보고를 살해하였다.

장보고는 불행히도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운 해상무역의 위업과 한중일을 연결하는 해상실크로드는 정화(鄭和)보다 500년 이상이나 일렀다. 장보고는 동아시아 경제발전에 적잖은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장보고 기념탑】:

장보고 기념탑은 1994년 7월 한국세계민족연합회장인 최민자여사에 의해 건립되었다. 기념탑은 두 개의 기둥으로 되어있는데, 각각의 기둥은 중국과 한국을 상징하고 두 기둥의 연결은 두 민족의 오랜 우정을 상징한다. 두 개의 기둥을 연결한 곳에는 김영삼 전직 대통령이 ‘장보고 기념탑’이라고 적은 편액이 남아있다.

최민자여사는 적산 연화정에 장보고 기념탑을 짓기 위해 총 10만 달러 모금을 모았다. 기념탑은 두 개의 기둥으로 구성되고 높이 1.5m이며 석도(石島)의 붉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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