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태식칼럼](170)소련은 역시 대국이었다
[현태식칼럼](170)소련은 역시 대국이었다
  • 영주일보
  • 승인 2017.02.1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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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세계적인 학자 엘빈 토를러가 「권력의 이동」이라는 논문에서 ‘사회주의가 미래와 충돌하고 있다’라고 했는데 공산주의는 어떤가. 그 실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절호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런 설레임을 안고 있는 나를 태운 비행기는 1991년 10월 12일 오후 1시 19분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을 향해 이륙했다. 소련연방과 그 위성국들이 내리막길을 걷는 이유를 알아보고 이참에 공산주의 체제 속에서 생활하는 ‘고려인 한인회’도 방문해서 활약의 실상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덧붙여 대한민국과 북한간에 이산가족 상봉 활성화, 우편통신 왕래, 서로 필요한 물건을 나누어 쓰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상호신뢰를 두텁게하고 조성된 신뢰가 통일의 초석이 된다는 것을 한인회를 통하여 북한에 알림으로써 평화통일로 가는 길을 여는데 간접적 효과도 보려고 하는 의도도 이번 여행 목적에 내재되어 있다.

왜 이런 생각을 했는가 하면 이번 공산권 방문은 민주평화통일정책자문위 사무처에서 주선하였고 대상은 전국자문위원 중에 자비부담으로 가기를 희망하는 사람으로 구성한다는 평통사무처의 사업계획에 의한 행사이기 때문이었다.

우리 제주시의회 의원은 9명이 참가하였다. 제주시의회 의원은 10일 제주를 출발 11일에 국회의사당에서 대정부 질문을 방청했다. 지방화시대에 부응하여 알찬 의원활동을 하기 위한 연찬의 일환이다. 국회 견학 후 일부 의원은 서울 중구의회를 시찰키로 하고 일부 의원은 동구라파 시찰단에 합류하였다.

평통사무처에는 인솔자로 직원 1명이 나왔다. 출발에 앞서 체제가 다른 비우호적인 나라에서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숙지하고 준비할 것들을 챙겨 12일 공항으로 떠났다. 전국에서 참가한 인원은 17명이었고 나는 여행단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되었다. 특히 공산권여행단 단장역이어서 대단히 어려울 것 같았다.

여정에는 모스크바와 카자흐스탄 알마타에서 교민과 교류하는 회합이 있어 대표자로의 처신도 우려스러웠다. 사상이 다른 사람들과 작은 오해라도 빚어지면 국가전체에 대한 영향이 크게 미치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공상을 하다보니 11시간 이상 걸리는 4000여 마일 비행이 끝나 모스크바 세리미치 2공항에 안착하였다.

저녁시간이었다. 국제공항 청사에 내리니 모두가 아연실색하였다. 공항의 어두운 조명, 지저분한 바닥, 기둥마다 20개의 형광등에 5개만 켜진 것. 거기에다 화장실 가까운 곳에서 거친 널판자 식탁에 빈약한 음식을 놓고 선채로 식사하는 사람들의 허름하기 짝이 없는 차림새하며, 거기에 음식과 오물이 합쳐 발산하는 역한 냄새가 온 청사 안을 진동하고 있었다.

변소에 가보니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불결한 장면이 펼쳐졌다. 양변기 뚜껑은 아예 없고 휴지도 없다. 변기나 주위는 얼마 동안이나 청소를 안했는지 오물이 튀고 엉키고 눌어있어 발을 들여놓을 수 없을 정도였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어디에서도 경험해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공항직원은 여행객을 접대하는 에티켓 자체를 모르는 것 같았다. 입국비자 검사나 세관통관 때도 담배나 타이즈 양말이라도 건네야 통과되지 주는 것이 없으면 마냥 서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정말 공산주의 국가에 대하여 먼저 갔다온 사람의 말이 생생하게 맞아 떨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를 안내하는 현지 가이드는 ‘마리나’라고 하였다. 예쁘장한 기혼여성이었다.

버스 좌석은 앉기에 혐오스러웠다. 의자는 폐기처분해도 조금도 서운하지 않을 정도로 해지고 땟국이 묻어있었다. 도로에 나오니 안개가 끼고 불빛이 어두워 유령의 도시처럼 음산하였다. 도로는 넓고 중앙분리대는 화단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꽃 한송이 없고 가드레일이 너덜너덜해서 손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우리가 도착한 코스모스 호텔은 객실이 1,400개나 된다고 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을 치르기 위하여 프랑스와 합작으로 지은 매우 유명한 호텔이라고 하였다. 고려인 한인회와 간담회때 들은 이야기다. 호텔의 외모와는 내부가 전연 딴판이었다. 로비에 형광등은 화려하게 설치됐으나 깨진 것이 그대로 있고 불이 켜지지 않았다. 바닥은 쓰레기통 같고 로비의 긴 의자는 천이 찢어지고 속을 채운 것들이 떨어져 나갔다. 팍걸이도 고장나 있고 어떤 것은 아예 거친 나무의자였다. 휴식하기가 여간 거북한게 아니다.

방을 배정받고 들어가봤더니 여기서는 정말 기절초풍하기 딱 알맞았다. 나무침대에 다 떨어진 매트 두 개가 놓여있고 이불은 누더기 천이 고작이었다. 텔레비전은 놓여있으나 고장났다. 화장실은 공항화장실 상태와 비슷했다.

치약, 칫솔, 면도는 구경도 못하였다. 수건도 불결하고 비누도 없다. 향수나 크림 같은 것을 말하면 너무 호사스런 소리 한다고 해야 할 판이다.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의 실상을 알려고 할 필요도 없다. 지금까지 본 것으로 충분한 것 같다. 오죽하면 대국의 원수가 몸소 원조 받으러 작은 우리나라에까지 와서 손을 벌렸겠나. 이유를 알 것 같다.

공산주의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리가 없다. 이 나라가 이토록 가난하게 된 주범은 공산주의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식사는 호텔음식으로 했는데 외국인이나 귀빈을 위한 특식이며 일반인은 대접받을 수 없는 음식이라고 하였다. 그런 음식 메뉴가 딱딱한 검은 밀빵을 우리나라 식빵처럼 잘라놓았고 치즈와 버터, 고기덩어리, 사라다 등이 식탁에 올라왔지만 사라다는 우리나라 양배추 맛과 달라 모두가 입맛에 거슬른다고 투덜거렸다.

나는 명색이 단장으로 나까지 불평을 하면 가이드와 관계가 불편해져서 하루도 아닌 여러날을 원만히 지낼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음식이 맛있다면서 정말 맛있는 듯이 먹었다. 그랬더니 나보고 식성이 소련에서 살기 적합하다고 놀려대었다.

일행들이 며칠 후 나 보고 음식 잘먹어 살쪘다고 하면서 한국에서 가져간 라면을 나에게는 안주어도 되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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